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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그와 일요일의 그녀

태수 07

by 융 Jung

태수 07

 그 뒤로도 태수는 자동차에 두 번 더 치였다. 한 번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신호등이 분명히 파란불로 바뀌어 있었기에 태수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교차로를 빠르게 돌던 은색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를 덮쳤다. 순간 온몸이 허공으로 뜨며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눈앞에서 회전하는 하늘과 아스팔트, 사람들의 놀란 얼굴이 교차했다. 바닥에 떨어져 온몸이 쿵 하고 부딪히자 숨이 턱 막혔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며 “괜찮니?”라고 묻는 소리 속에서 태수는 본능적으로 일어나려 했다. 아이답지 않게 고집스럽게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일으켰다.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 그 자리에 더 오래 누워 있으면 자신이 초라해질 것 같다는 수치심이 더 컸다.

 또 한 번은 골목 모퉁이에서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당까지 몇 걸음 남지 않은 순간, 배달용 오토바이가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그대로 그를 들이받았다. 태수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조심 좀 해라!”라고 소리만 지른 채 달려가 버렸다. 놀라 달려 나온 할머니가 태수를 부축했지만, 태수는 손을 뿌리쳤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울지 않았다. 자신을 탓하며 소리친 어른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흘릴 자격조차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넘어지고, 구르고, 부딪히고, 쓸렸지만 다행히 뼈나 인대가 끊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몸에 새겨진 흔적은 교통사고의 흉터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맞아 든 멍들이었다. 종아리, 팔뚝, 등허리에 생겨나는 멍은 자동차에 치였을 때보다 더 자주, 더 깊게, 더 오래 남았다. 정작 자동차에 치일 때보다 교실에서 받는 주먹질과 발길질이 태수에게는 훨씬 더 아팠다.

 5학년이 되면서 태수의 몸은 부쩍 자랐다. 팔과 다리가 쑥쑥 길어지고 어깨가 넓어졌지만, 그 성장의 기쁨은 한순간이었다. 성장이 빠른 만큼 옷은 금세 작아져 입지 못하게 되었다. 소매가 손목 위로 올라가고, 바지 자락이 발목 위에서 댕강 끊긴 듯 짧아졌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할머니와 함께 밤 까기를 해도 수입은 고작 밥상에 올릴 반찬거리를 마련하거나 보일러용 등유를 사는 데 쓰일 뿐이었다. 새 옷은 언감생심이었다.

 어머니 영민이 서울로 올라올 때조차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농한기에 잠시 들를 때에도, 아버지에게 맞아 도망치듯 몰래 찾아왔을 때에도 그녀는 태수의 손을 잡고 옷가게로 가는 법이 없었다. 대신 친척들과 지인들에게서 얻어 온 옷을 깨끗하게 빨아 다리고, 세탁소 옷걸이에 걸어 새것처럼 꾸며 건네주었다. 옷은 늘 누군가의 몸에 먼저 닿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태수가 그 옷을 입고 나가면 언제나 신기할 만큼 금세 들통이 났다. 옷의 원래 주인과 마주치는 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친척들의 아이들이었다. 사촌 형이나 누나, 이웃집 먼 친척들이 입던 옷을 태수가 다시 입는 것이었다.

 태수는 그런 자리에서 늘 얼굴이 붉어졌다. 문제의 발단은 옷의 주인들의 부모, 즉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낡은 옷을 내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어차피 버리려던 옷' 이라는 무심한 말이 태수의 가슴에 상처처럼 새겨졌다.

 가족 모임 자리에서는 그 말들이 현실이 되었다. 식구들이 한데 모여 앉으면 아이들도 함께 모여 놀았다. 그때 불쑥, 옷의 주인이었던 아이가 소리쳤다.
 “어? 엄마가 버렸다고 했던 내 옷이랑 똑같네. 여기 그림 지워진 부분도 똑같아.”

 태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귀 끝이 불타듯 달아올랐다. 누구도 노골적으로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모욕적이었다.

5학년이라는 나이가 태수는 싫었다. 저학년일 때는 억울하면 그냥 주저앉아 울고 떼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울 수 없었다. 울면 더 비참해지고, 더 큰 조롱을 받게 될 뿐이라는 걸 알았다. 참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이었다.

가장 큰 고통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 이른 장마로 운동장에 나가 놀지 못하던 어느 날, 종만이 교실에서 태수를 노려보았다. 태수는 까닭 모를 두려움에 시선을 피했고, 종만이 아직도 쳐다볼까 신경이 쓰여 고개를 들다가 눈이 마주치면 다시 눈을 돌려야 했다. 종만이 변성기가 온 목소리로 조용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물었다.

“야, 촌놈. 너 그 옷 어디서 났냐? 훔쳤냐?”

“아니야, 할머니가… 할머니가 구해 오셨어.”

“구해와? 어디서?”

“몰라. 그만 물어, 왜 그러는데…….”

순간 종만이 목청을 높여 말했다.

“그야 이건 내 티셔츠이니까! 얘들아, 태수 진짜 거지인가 봐! 이것 봐, 맞네! 맞아!”

종만이 티셔츠의 아랫단을 들추자 희미하게 그의 이름 두 글자가 남아있었다. 이윽고 다른 아이들도 외쳤다.

“어쩐지, 지난번에 입고 왔던 건 울 엄마가 버린 옷이랑 똑같았어!”

“나도 본 것 같아.”

“나도야!”

이번에는 홍주도 태수의 역성을 들어주지 않았다. 태수가 오토바이에 치인 날이었다.

 벼농사를 짓는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태수의 가족에게는 정부로부터 매달 쌀이 지급되었다. 커다란 쌀자루가 도착할 때면 조금은 부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가난한 집에만 주어진다는 사실은 태수의 자존심을 무참히 할퀴었다. 정부의 쌀로 먹고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만큼, 누군가의 호의로 옷을 얻어 입는 것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태수는 종종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왜 항상 버려진 옷이어야만 할까?’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옷의 목을 억지로 늘려 버리거나 벽에 비벼 헐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옷을 대신하는 것은 또 다른 버려진 옷이었다. 그 절대불변의 사실은 태수에게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옷감은 달라져도 굴욕의 감정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 옷의 원래 주인을 만나게 될지 모를 불안에 떨어야 했다.

 밤마다 이부자리 속에서 태수는 눈을 꼭 감은 채, 교실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가족 모임에서 들려오던 사촌 형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소리들은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리나 오토바이 엔진 소리보다 더 날카롭고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차라리 또다시 자동차에 치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스치곤 했다. 이번에는 더 큰 차가 좋을 것 같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을 만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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