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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그와 일요일의 그녀

태수 06

by 융 Jung

태수 06

 홍주는 다른 아이들이 그러듯이 태수에게도 어느새 반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누군가 홍주를 “반장”이라 부르자, 태수는 습관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에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던 사이였다. 그런데 자신마저 홍주를 반장이라 부르는 순간,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듯했다. 홍주는 그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태연했지만, 태수의 마음은 달랐다. 그것은 분노로 이를 갈며 고안해 낸 유일한 복수였다. 친구를 이름 대신 반장이라 부르는 것이 고작 복수라니, 어쩌면 어리석고 하찮았지만, 태수에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까지는 보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홍주가 더 이상 소연과 함께 태수네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방 한편에서 조용히 숙제를 하던 시간, 사과를 깎아 함께 먹던 시간이 사라졌다. 기다리다 지친 태수는 홍주에게 직접 따져 묻고 싶었으나,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홍주는 언제나 당당했지만, 태수는 늘 움츠러들어 있었다.

 결국 태수는 단짝인 홍주가 교무실에 간 사이 어렵게 소연에게 말을 꺼냈다.
 “이젠 아주 안 오는 거야, 우리 집에?”

 소연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태수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응. 선생님이 이제 그만 가도 된대.”

 그 순간 태수의 온몸을 미움과 분노가 동시에 휘감았다. 어금니가 으스러질 듯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꽉 움켜쥐자 손바닥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분노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그는 입술을 비틀어 외쳤다.
 “이 씨이발년아!”

 욕설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자 동시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태수는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문으로 내달렸다. 미닫이문을 거칠게 열어젖히자, 마침 교무실에서 돌아오던 홍주가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홍주의 눈이 커다랗게 동그랗게 떠진 순간, 태수는 몸을 숙여 그녀의 어깨를 밀치고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오른손을 잡아채듯 세게 뒤로 당겼다.

 순간 중심을 잃은 태수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바닥에 등을 세게 부딪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등줄기와 머리에서 서서히 밀려오는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 그때 누군가의 주먹이 그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거지새끼가 친구들 시끄럽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종만.

 숨이 막혀 외마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발길질이 허벅지에 꽂혔다.
 “소연이한테 욕했으니까 맞아도 싸.”
 “못된 짓 하면 혼나야지.”
 “나 저런 욕하는 친구 처음 봐.”

 아이들이 둘러서서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 먹먹하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물속에서 바깥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희미하던 말들이 차츰 선명해졌다. 아이들의 놀림과 욕설은 화살처럼 태수의 몸을 뚫고 들어와, 차가운 교실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다.

 “야, 그만 때려.”

 홍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카롭지만, 동시에 떨리는 음성이었다. 그제야 아이들이 발길을 멈추었다.

 태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재빨리 일어나 달리고 싶었지만, 맞은 곳이 욱신거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억지로 서두르다가는 더 비참한 꼴만 보일 것 같았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 몸을 가누어 교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태수 때린 애들, 내가 다 써 놓는다.”

 뒤에서 홍주의 새된 목소리가 울려왔다. 순간 고마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더 큰 수치심이 뒤따랐다. 자신이 지켜야 할 친구가 오히려 자신을 지키려 싸우고 있었다.

 태수는 신발장으로 가 신발을 꺼내 신었다. 복도를 터덜거리며 걷는데, 마침 수업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큰 소리로 울렸다. 그러나 그는 상관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발끝만을 바라보며 복도를 걸었다. 그 길목에서 교사 둘을 마주쳤다. 그러나 그들은 태수를 스쳐 지나가며 몸을 비켜 세웠을 뿐,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도 않았고 교실로 돌아가라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태수의 가슴을 더 세게 짓눌렀다.

 정문을 나서 인도로 발을 옮겼다. 발걸음은 무겁고 어깨는 축 늘어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택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도 전에, 그는 차에 부딪혀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순간, 귀가 멍해지고 시야가 흩어졌다. 곧 아스팔트 위로 곤두박질치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의 몸은 차가운 도로 위에서 미동도 없이 멈춰 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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