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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그와 일요일의 그녀

진아 05

by 융 Jung

진아 05

 진아의 부모는 대가족에 대한 꿈이 없었다. 지숙은 한 번의 출산이 가져온 신체적 변화와 긴 회복 과정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은 여인에게 축복이라고들 하지만, 지숙에게는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자유를 제약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다시는 그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굳혔다. 남편 찬우 역시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당연한 흐름이 될 것이며, 한 사람의 수입으로 네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 보았다. 차라리 둘째를 포기하고 지금의 생활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여겼다.

 한때는 양가 어르신들이 손자를 보고 싶다며 성화를 부린 적도 있었다. 어르신들의 바람에 못 이겨 잠시 둘째를 생각해 본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접었다. 재산과 수입으로 미루어 보아 다자녀를 두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터였지만, 굳이 노산의 위험과 재산의 분배를 감수하면서까지 또 다른 아이를 낳을 이유가 없었다. 설령 둘째를 낳는다 하여도 반드시 아들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별을 골라 인공수정을 한다는 발상은 두 사람 모두에게 탐탁지 않았다. 결국 부부는 이견 없는 합의에 도달했다. 아내의 뜻을 존중하기로, 그리고 오롯이 진아에게 집중하기로. 찬우는 그렇게 하면 아내를 더 아끼며,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면서도 사업에 전념해 재산을 불릴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진아는 일찍이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라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 떼쓰기를 멈추었다. 대신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만족감에 푹 젖어 살았다. 외동딸이라는 자리는 그녀에게 외로움 대신 기쁨을 안겨 주었다. 집안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해 있음을 아는 순간마다, 진아는 더 밝게 웃고, 더 씩씩하게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덧 5학년이 되었다. 그 시절, 그녀에게 처음으로 마음이 끌리는 친구가 생겼다. 같은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학원의 동선이 겹치다 보니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또래였지만 키는 진아보다 조금 작았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왜소해 보이지는 않았다. 소년의 눈빛은 생기 넘쳤고, 피부는 환하게 빛나며 웃음소리는 언제나 힘차게 울려 퍼졌다. 무엇보다 진아의 마음을 흔든 건, 그가 자신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점이었다. 늘 앞서 나가야 직성이 풀리던 진아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능가하는 또래의 등장은 새로운 자극이자 매혹이었다.

 진아는 점점 소년의 존재가 마음에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교재를 펴놓고 문제를 푸는 시간,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조차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진아는 고민했다. 곧장 고백을 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자니 용기가 부족했다. 대신 수진에게 상담을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수진이라면 분명 현명한 답을 줄 것 같았다.

 그러나 행동에 옮기기도 전에, 진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예전에 수진이 했던 말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가서는 반장 하지 말고 더 재미있는 걸 해야지. 연애. 이건 비밀이다?” 그 유쾌한 밀담은 당시엔 그저 농담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달랐다. 수진이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한 말은 결코 아니었지만, 진아는 왠지 그 말을 단서처럼 받아들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지금은 말하면 안 돼.’ 그렇게 직감했다.

 그래서 진아는 고백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스스로를 다듬고, 그로부터 고백을 받아내리라 다짐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성격이 남들보다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소년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더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날 이후 진아는 더욱 노력했다. 학원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환하게 인사하고, 수업 중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곧장 도움을 청하며, 작은 배려라도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의 친절과 상냥함이 되돌아올 때마다, 진아는 가슴 깊은 곳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듯한 행복을 느꼈다. 때로는 그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다가도, 또 때로는 속마음을 들킬까 두려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진아에게는 소중했다. 귀 끝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콩닥이는 순간순간마다, 그녀의 첫사랑은 조심스럽고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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