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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그와 일요일의 그녀

진아 04

by 융 Jung

진아 04

 4학년이 되고부터 진아는 학교 공부와는 별개로 집과 학원에서 이미 중학교 과정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학교는 진아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성적의 압박에서 조금 벗어나 친구들과 떠들며 놀 수 있었고, 배운 내용을 가볍게 되짚으며 여유를 느낄 수도 있었다.

 진아는 학교가 좋았다. 수업이 쉽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가 창밖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고학년 언니 오빠들의 모습이 보일 때,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급식실에서 줄을 서서 받아온 따끈한 국과 반찬을 친구들과 나란히 먹을 때, 그 모든 순간들이 진아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쌓여갔다.

 전국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진아에게 교과 과정은 여전히 가볍게 느껴졌다. 단 한 과목만 빼고는. 미술은 진아에게 큰 벽처럼 다가왔다. 수채화, 크로키, 소묘, 조소,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진아는 매번 새로운 난관 앞에 서는 기분이었다. 잘 그리거나 고운 색을 칠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무언가를 주물러 형태를 만들거나 조각칼로 깎아 작품을 빚어내는 일은 훨씬 더 힘들었다.

 어느 날은 점토로 작은 동물을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진아는 고양이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점토는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머리는 크고 다리는 가늘어 금세 부러졌고, 꼬리는 붙이자마자 떨어져 나갔다. 겨우 모양을 맞추어 말려 두었더니, 그 위에다 색칠을 하고, 마지막에는 냄새가 고약한 니스를 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아는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미술이람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런 고민을 단 한 번, 진아는 수진에게 털어놓았다. 다른 과목 이야기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미술만큼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수진은 잠시 웃더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술은 공부하지 않고 즐기기만 해도 충분히 좋은 거야. 꼭 점수를 잘 받아야만 가치 있는 게 아니란다. 진아가 못한다고 느낀다 해도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되지. 못하는 게 있는 것도 나쁜 게 아니야.”

 그 말에 진아는 가슴이 놓였다. 수진은 늘 아이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뿐 아니라, 잃지 않고 포기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바로 수진이었다. 진아는 미술을 잘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로는 미술 시간에도 예전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부모님 역시 미술 성적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영어 단어 시험에서 실수하거나 수학 문제에서 계산을 틀리면 잔소리를 늘어놓던 부모님도, 미술만큼은 그냥 웃고 넘어갔다. 예술은 원래 어렵다, 모든 걸 잘할 필요는 없지 하고 말하며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학교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진아가 미술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칭찬은 덜했지만, 흉도 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유달리 빼어나게 조소 작품을 빚어내는 몇몇 아이들의 작품은 건조하기 위해 집으로 가져갈 때의 모양과 며칠 뒤 마른 후 학교로 다시 가져왔을 때의 모양이 크게 달랐다. 너무 매끈하고, 너무 정교했다. 진아는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아이가 만든 게 아니라 부모님이 한 게 틀림없다. 부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찰흙을 주무르고, 아이는 그 모습을 옆에서 고마워하며 지켜봤을 터였다.

 그 상상을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그렇게까지 애써 주는 모습, 아이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는 모습. 하지만 진아는 그것이 부럽지는 않았다. 자기 작품이 엉성하고 투박해도, 그게 오롯이 자기 손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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