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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Jul 07. 2024

[창작소설] 벗, 미치광이 - 제2권 21화

희망-2

{ 벗, 미치광이 - 제2권 20화 }에서 이어집니다.


 주사라니, 질색이다. 마약 주사라면 더욱이 사양이다. 형사라는 남자와 그의 손에 들린 마약 주사기, 이 둘은 한데 뭉쳐진 거대한 괴물이 되어 나를 위협한다. 두려움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그렇기 때문에 끔찍하게 혐오스러운 이 남자의 비위를, 나는 맞춰야만 한다. 그의 성질을 돋우다가는 애써 얻은 탈출의 기회가 날아가고야 만다. 일상으로의 회귀가 코앞에 있고, 유일한 장애물은 이 남자 하나뿐이다. 그저 고시원에서 편의점으로 출근하고, 펼쳐진 문제집을 마주한 채 졸고, 폐기 음식을 기쁘게 먹고, 식비를 아낀 돈으로 산 담배를 느긋하게 태우고, 눈이 시리도록 환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을버스를 타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몇 발짝만 더 걸으면 철길의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무자비하게 달려오는 거대한 열차에 부딪히지만 않으면 된다. 어렵겠지만, 잘못될 수도 있지만, 긴장을 조절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고마워요, 잘 챙겨갈게요.

주사기는 사양해도 될 일인데 내가 왜 이렇게 말할까. 그래, 긴장 탓이다. 어떻게든 형사가 경계하지 않도록 잘 둘러대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형사가 주사기를 건네며 대꾸한다.

 「고맙기는, 괜찮아. 그나저나 너 잘하더라?

주사기를 받아 든 나는 투명한 액체가 반쯤 들어있는 가늘고 길쭉한 관을 살펴보고, 주삿바늘을 가리고 있는 딱딱한 뚜껑을 손 끝으로 건드려 보다가 목욕가운의 주머니에 넣는다. 히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긴다. 양 허리에 손을 받친 채 고개를 숙여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내가 대답한다.

 「잘하기는⋯⋯. 아니에요. 참, 주사기는 아무 데나 놓으면 돼요? 허벅지나 엉덩이 같은 데에?

자꾸만 쓸데없는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아니지, 내가 정말로 마약을 스스로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야 형사는 경계를 풀 것이며, 또한 그에게 강제로 주사를 맞게 되는 불상사도 피할 수 있다. 불필요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임기응변이었던 셈이다.

 「아니지, 아니야. 정맥에 꽂아야지. 팔도 좋고, 손등이나 발목도 괜찮아. 손 이리 줘봐.

거절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므로,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내가 왼팔을 뻗자 그가 몸을 바로 세우며 오른손으로 내 손목을 잡더니 목욕가운의 소매를 걷어 올린다. 그러고서 그는 왼손을 펼쳐 보이면서 내가 주사기를 넣었던 목욕가운의 주머니를 향해 턱짓을 한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그는 코웃음을 친다.


 「뭐야, 물론 네 거지만, 내가 준거잖아. 네가 쓸 거고. 그런데, 그러니까, 지금 쓰기에는 ⋯⋯. 아깝다? 뭐, 그런 거야?」


 순간, 나는 뇌가 두 갈래로 쪼개지고 벌어지며 각자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하나씩 맡아 육탄전을 벌이는 듯한 두통을 느낀다. 쪼개진 두 갈래의 뇌가 저마다 주장을 하는데, 순서를 주고받지 않고 동시에 쏟아내듯이 내게 떠들어대는 통에 머릿속이 소음으로 가득 찬다. 한쪽의 주장을 들으려고 집중할라치면 멈추지 않고 떠들어대는 반대쪽 의견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쪽의 주장을 어느 정도 듣다가 이내 다른 한쪽으로 주의를 돌려 반대되는 주장을 듣고, 또다시 다른 의견을 듣기를 반복한다. 혼란이 극한에 치닫고, 그 끝에서 나는 진실을 마주한다. 마침내 두 갈래의 뇌가 설득과 고함을 멈추고 주인의 판결을 잠자코 기다린다.


 형사가 내게 아까우냐고 물었지. 그래, 아깝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깝다. 내가 주머니에 넣은 주사기, 그 속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약이 너무나도 아깝다. 인정하기 싫지만 동시에 사실이다. 이 약만 있으면, 고달프고 힘들기만 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이 약을 함부로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이것은, 실제로 값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값은커녕 이름조차 모른다. 혐오스러운 얼굴의 형사가 어디에 사는지도, 그의 전화번호도 모르기에 내가 그를 찾아올 방법이 없음은 물론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게 주어진 이 단 하나의 주사기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오직 삶이 더없이 괴롭다고 느껴져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다시 살아갈 의지를 가질 도구로써 귀하게 쓰일 것이다. 결단코 이 약이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될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형사가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하지만 진득한 인내심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질문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답을 계속 미룰 수는 없다.

 「네⋯⋯.」

 「하! 그 한마디 하려고 여태 뜸을 들였어? 그래, 당연히 아깝겠지.」

나는 그의 목청 큰 감탄에 깜짝 놀라 목과 어깨를 움츠린다. 형사는 주머니에서 주사기 하나를 더 꺼내면서 말을 잇는다.

 「잘 기억해 둬.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다, 이 말이야. 응?」

 「네⋯⋯.」


 형사가 주사기를 입에 가로로 물고, 두 손으로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지더니 작고 부스럭거리는 물건을 꺼내며 말한다.

 「넌 이런 거 많지? 여자니까. 안 그래?」

 「네, 많아요.」

 「아이 씨⋯⋯. 야. 야! 너는 이 씨⋯⋯. 대답할 때 무조건 다섯 글자 이상으로 해. 뭐만 하면 다 단답형이야, 어떻게 된 게 말이야. 알겠어? 아니 뭐 나만 나쁜 놈이 된 것 같잖아?

화가 난 그가 입에 문 주사기를 왼손에 들고 소리를 친다. 옳은 말이다. 예의 바르게 대답하자. 다섯 글자보다 길게, 어서.

 「네! 꼭 그렇게 할게요, 다섯 글자 넘게 말할게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잘할게요.」

 「옳지, 옳지. 이쁘다.」

그가 다시 주사기를 입에 가로로 물고 대답한다. 그가 투명한 비닐포장에서 꺼내든 것은 검은색 머리끈이다. 편의점 생필품 진열대에  걸려 있는, 한 봉투에 서너 개씩 들어있는, 그런 평범한 머리끈이다. 그는 끈 하나를 꼬아 내 손목으로 밀어 넣는다. 그가 입에 문 주사기를 다시 오른손에 들고 말한다.

 「보통은 봉투에 들어있는 걸 있는 대로 죄다 끼워서 이두근 쪽으로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 아가씨는 팔뚝이 가느다라 하니까 하나도 꼬아서 끼우는 거야. 쓸게 없는 근육 없이 보들보들한, 그렇지. 이렇게 가느다란 팔이 나는 좋더라.

그는 주사기를 다시 입에 가로로 물고, 내 손목에 걸린 머리끈을 양손으로 벌려 팔꿈치 위쪽으로 옮기고서 이쯤이다 싶었는지 탁-하고 손을 놓는다. 머리끈이 조이는 압력은 꽤 아프다.


 또다시 주사기를 손에 든 형사가 말한다.

 「죔죔.」

 「네?」

 「아이 씨, 또 단답형이네. 네가 들은 게 맞아. 반문하는 거, 그거 습관이야.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되묻는 거, 그거 말이야, 아주 나쁜 습관이야. 예의 없는 거라고. 자, 죔죔.」

뭐지? 뭐야⋯⋯. 죔죔⋯⋯. 죔죔⋯⋯? 아, 잼잼.

 「미안해요, 죄송해요. 말씀하시는 게 무슨 뜻인지 다음부터는 잘 생각해 보고, 반문 같은 거 안 하고, 다섯 글자 넘게 대답도 잘할게요. 잘⋯⋯. 잘할게요.」

나는 이내 왼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그리 여러 번 하지도 않았는데, 금세 피부 아래의 핏줄이 보랏빛을 띠며 선명해지고 심장의 박동에 맞춰 불뚝거리는 느낌이 피부 너머로 전해진다. 그가 주사기의 뚜껑을 앞니로 물어 빼고는 내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옆으로 나란히 선다.

 「잘 보고 배워.」

그는 이렇게 말하고 또다시 주사기를 입에 문다. 그는 왼손으로 내 왼팔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내 팔 오금을 더듬으며 살펴본다. 그러는 중에 그의 오른쪽 팔꿈치가 내 가슴을 스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한다. 마침내 그가 오른손으로 주사기를 옮겨 들고 내 팔오금에 볼록하게 오른 혈관에 바늘을 꽂아 넣는다. 아랫도리에서 찌릿한 느낌이 전해지고, 온몸이 기대에 들뜬다. 나는 준비가 됐다.


 「이렇게 하는 거야. 알겠지? 자. 이제 네가 직접 해봐.」

나는 반쯤 감았던 두 눈을 부릅뜬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주사기에서 떨어져 있고, 다만 그의 왼손이 주사기가 꽂혀있는 내 왼팔을 받쳐 들고 있을 뿐이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오른손으로 주사기를 쥐고 밀대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른다. 내 몸은 기대에 부풀어 이미 아랫도리를 적시고 사지를 다. 하지만 주사기가 도통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주사기 밀대를 눌러도 움직이지 않는다.

 「뭐야, 뭔데! 이거 왜 안돼? 이거! 안 움직인다고! 약이 안 나와. 이게 왜⋯⋯.」

내가 왼팔에 꽂힌 주사기를 잡고 성질을 내던 순간, 형사의 널찍한 손바닥이 내 왼쪽 뺨을 휘갈긴다. 이 충격은 가늘고 날카로운 회초리보다 굵고 둔탁한 몽둥이에 더 가깝다. 고개와 함께 온몸이 시계방향으로 획 돌아간다. 발은 꼬이고, 지지할 곳 없이 나는 승강기 앞 복도에 고꾸라진다. 주사기가 왼팔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얼른 팔을 뻗어 주사기를 쥔다. 이제야 알겠다. 그가 내 팔에 꽂은 주사기는 속이 비어있다.

 「성실하게 살아야지. 자꾸 공짜를 바라면 안 되는 거야.」

형사가 쪼그리고 앉아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우선은 대답을 먼저 해야 한다. 지체했다가는 그의 성질을 돋우게 된다.

 「잘못했어요!」

순간, 내뱉은 말이 몇 글자인지 몰라 위축된 나는 급한 대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다행히 다섯 글자다. 또 맞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왜 자꾸만 매를 벌까. 그를 향해 언성을 높이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뺨이 욱신거리고 입 안에서 비릿한 피가 느껴진다.


 「오십만 원. 약 이름은 없어. 그러니 나가서 성실하게 살아. 다음에 봤을 때 네가 여전히 내 마음에 들만큼 예쁘고, 네가 그날 하루 내 연인이 겠다고 매달리면, 그때는 오만 원에 약을 줄게. 네가 안 예쁘거나, 태도가 불량하거나, 내가 그날 피곤하거나 그러면 얄짤 없이 오십만 원이야. 이제 주사 놓는 방법은 이 오빠가 친절하게 알려줬으니까, 가봐. 나가서 성실히 살아. 참고로 넌 지금 안 예뻐.


 입안에 고이는 침 섞인 피를 삼키는데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나는 텅 빈 주사기를 바닥 한쪽 구석으로 던져놓고, 피가 나는 왼쪽 팔 오금을 오른손으로 누르다가, 이제는 쓸데없이 아프기만 한 머리끈을 잡아 빼고, 걷어올렸던 목욕가운 소매를 내린다. 형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 곳곳의 근육이 떨리고 조절하기가 힘든 탓에 나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벽을 짚어가며 일어선다. 나는 그에게 인사와 함께 몇 가지를 물어보기로 한다.

 「어떻게 하면 아저씨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저씨 말고, 자기.」

 「네?」


 아차, 다섯 글자. 또 깜빡 잊었다. 남자의 완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다시 맞은 왼쪽 뺨은 풍선처럼 부풀고, 얇아진 피부는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며, 입속에서 방울토마토처럼 순간에 터져 나오는 피는 호흡을 방해한다. 맞는 데에도 요령이 생기는지,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고 용케 잘 서있다. 하려면 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이번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자, 자기⋯⋯. 미안해요. 나, 나는⋯⋯. 그러니까, 제가요, 저는요⋯⋯. 자기한테 어떻게 연락할지를 모르는데요. 전화번호라도 알려주시면⋯⋯.」

 「됐어. 내가 알아. 네가 어디에 살고 어디서 일하는지. 너는 그냥 편의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내가 언제 한 번 담배라도 사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는 볼 일 없어. 이제 좀 가라. 귀찮다.

 「,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난처하게 됐다. 육교 사건 이후로 병원에서 너무 긴 시간 입원했던 터라 내가 살던 선불 고시원의 관리인은 이미 내 짐을 빼다가 창고에 처박아 뒀을게 뻔하다. 편의점 사장도 역시나 야간에 자리를 지킬 직원을 새로 뽑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디서 살아야 할지도 일해야 할지는 나도 모른다. 형사가 알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가 이런 사정을 형사에게 줄줄 읊었다가는 오른쪽 뺨도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 뻔하다. 펜트하우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승강기를 타고 로비층 단추를 누른 건 잘한 일이다. 단 한 번 멈춤 없이 내려온 승강기에서 나와 곧장 앞으로 걸음 한다. 카페의 입구가 호텔의 커다란 출구 오른쪽으로 보인다. 카페 입구가 다가올 즈음 몸을 왼쪽으로 틀고, 좌우로 아치모양을 한 계단 앞을 가로지르고, 출구를 지나치고, 컨시어지라고 쓰인 접수대 뒤에 단정하게 서있는 호텔 직원에게 다가간다. 목욕가운과 객실 슬리퍼 차림에 얼굴의 절반은 멍투성이인 나를 마주한 그의 표정은 뜻밖이게도 아주 온화하고 친절하다. 힘든 하루를 보내셨나 보군요-따위의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다만 조용하고 친절하면서도 격조 있는 어투로 내게 묻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모른척해주는 그가 참 고맙다.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다시 침이 섞인 피를 한 모금 삼킨다. 또다시 몸이 파르르 떨린다.

 「택시를 좀 불러주세요.」

 「대략적으로 목적지가 어디 일지요?」

 「노량진역⋯⋯. 노량진역이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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