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샤 휘웨이는 영국에 사는 커리어 우먼이었습니다. 그녀는 간질, 학습장애, 식이장애가 있는 아들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설사를 하고 알레르기, 간질 발작까지 일으킬 때 그녀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패트리샤는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다가 우연히 티비를 통해 음식 때문에 설사뿐 아니라 자폐증까지 유발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녀는 아이에게 글루텐이 포함된 밀가루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만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들은 설사가 멈췄고 서서히 병이 호전 되었습니다.그녀는 영국 최대 유통회사에 편지를 써서 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전했습니다. 테스코 경영진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녀는 알레르기를 위한 음식을 개발했습니다. 그녀의 역경이 곧 경력이 된 것입니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매우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는데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 때문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음악대회에 많이 나갔습니다. 입상을 못 할 때도 많아 속상하기도 했지만 저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7전8기의 정신으로 계속 도전했습니다. 한 번에 좋은 결과를 얻어내면 좋지만 대회에서 떨어지면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게 되고 자꾸 보완하게 됩니다. 꾸준히 노력하다보니 실력이 늘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가 중에 힘들게 산 사람을 꼽자면 베토벤을 뺄 수 없습니다. 그도 안데르센처럼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귀가 안 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많은 작품들을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의 삶은 귀가 안 들리는 것뿐 아니라 류마티즘, 염증, 복통, 안구 통증, 등으로 살아내는 거 자체가 고통이었지만 그는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음악을 남겼습니다.
베토벤은 한동안 작곡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와도 잘 되지 않았고, 시대가 바뀌어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던 베토벤은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시도들을 했습니다. 그가 귀가 안 들리던 시기에 작곡한 작품들은 그의 고난때문에 내공이 쌓여서인지 초기 작품들보다 깊이가 있고 특히 후기 콸텟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는 교향곡 9번 ‘합창’을 발표하였습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은 기존의 작곡 스타일을 벗어나 성악을 교향곡에 합치는 시도를 한 작품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합치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4악장에 4명의 독창자와 합창이 등장해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데 이 곡은 기쁨과 인류애를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환희의 송가’는 널리 사랑받았고 베토벤은 명 작곡가로 다시 인정을 받았습니다. 베토벤은 청년 시절부터 이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30년 정도 걸린 것입니다.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 베토벤이 거의 들을 수 없었기에 실질적 지휘자가 있었고 베토벤은 옆에서 중요한 부분에 사인을 주었습니다.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베토벤은 관중이 이 곡을 좋아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연주자 한 명이 베토벤이 뒤돌아서 청중석을 보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연주자의 도움으로 환호하는 관중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음을 상상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것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