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대도 나는 늘 같은 곳에 손을 대고
일정한 몸동작으로 규칙적인 패턴으로
밥을 뜬다.
두 공기나 세 공기, 네 공기. 어떤 때는 여덟 공기, 열 공기...
떠야 할 밥공기 수가 많아질수록
자세는 흐트러지고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짝다리를 하고 있기도 하고
집중한 나머지 사진 찍히면 전혀 안 될 입모양을 하고 있기도 한다.
그렇게 평소보다 조금 오래
밥주걱으로 밥공기에 밥을 옮길 때는
찰나의 순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기도 한다.
밥 때가 끼기도 하고 먼지가 쌓이기도 한,
내 손이 미처 닿지 못했던 그곳들을 본다.
늘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가 함께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늘 네가 보이고자 하는 것만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내밀한 마음으로 걷는 길은 너무 좁고 가파르고 게다가 울퉁불퉁해서
나는 그저 편하게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만 너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너에게는 먼지 낀 곳 때가 있는 곳 눈물이 고여 있는 곳
이러한 곳 저러한 곳 다 있어서
실은 우주처럼 이루어져 있는 너인데
나는 요즘 내가 가장 편안한 이 부엌을 오가며
겨우 습관처럼 그 밥솥 만지듯
손이 닿는 곳만 쓰다듬으며 매만지며
그렇게 겨우 너를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머무는 부엌에서 어느 날 문득 구석구석 앉은 먼지를 보며
네 생각에 잠긴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돌아서면 반드시 또 너를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하리라는 것을.
그런데 혹시 오늘만 정말 오늘만 내가 너를 조금 특별한 시선으로 보다면,
눈치채 주면 좋겠다.
아무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