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한 팬케이크를 굽다가 2 - 팬케이크 러브

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by 정원

팬케이크를 간식으로 내는 것은 별 특별한 노동 없이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다.


매우 단순한 과정 가운데서 생각은 명료해지고 동시에 섬세해진다.

그러다 보니 레시피 외에도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1. 반죽의 온도를 맞추거나 모양을 완전하게 만들겠다는 욕심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래야 즐겁게 만들 수 있다.

2. 반죽을 떠서 프라이팬에 올릴 때는 결단력 있게 재빨리 한다.

단호하게 떠서 옮기고 모양이 됐다 싶으면 지체 없이 주걱을 거두어야 한다.

머뭇거리면 예기치 못한 곳에 반죽을 흘리거나 모양을 망칠 수 있다.

3. 마지막 팬케이크를 구울 때는 나머지 주걱을 사용하여 남김없이 싹싹 반죽을 떠낸다.

그렇게 볼을 정리해야 설거지가 쉽다.





그 사람과 무엇이 되고자 만나지 않는다. 열렬히 사랑한다.
끝날 때도 열렬히 끝낸다.
그래야 삶의 한 페이지가 잘 정리된다.


딸아이도 사랑을 하게 될 거다. 열렬히 사랑하고 열렬히 헤어지고……, 그러다가 더 이상 그 누구도 무엇도 어떤 세상도 탐색할 필요가 없어지는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고, 끝날 테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 순간에 이랬던 날들 저랬던 날들 좋았던 것 나빴던 것 많은 것들이 꺼내어 보기 좋게 잘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다.


오늘 따라 아주 조촐하지만 맛이 좋은 팬케이크가 누군가의 인생처럼 식탁에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팬케이크를 굽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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