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예 Feb 18. 2022

집에 김이 쌓인다

다 엄마가 싸다 준 김이지

집에 김이 종류별로 쌓이고 있다. 곱창김, 파래김, 감태, 조미김... 종류별로 지역별로 다양하게 넘치고 있다. 남편의 작은아버님께서 주신 조미김 빼고 나머지 김들은 모두 엄마가 싸다 준 김이다. 처음 신혼집에 내 이삿짐을 옮길 때도, 잠깐 엄마 집에 들렀을 때도 엄마는 꼭 김을 싸줬다. 어제는 집들이라고 친정 식구들이 왔는데 엄마가 싸들고 온 각종 양식 꾸러미에도 김이 있었다.


김 몇 장을 김통에 담으면서 엄마가 그리워졌다. 엄마가 김을 자꾸 싸주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먼저 김은 가벼우니까. 가방이 무거운 날이면 엄마는 꼭 역에 차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언니랑 내가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게 안쓰러워서 조금이라도 덜 들게 하려고 역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곤 했다. 우리가 좀 늦어지면 역 부근을 몇 바퀴를 돌면서 그렇게 딸들을 기다렸다. 구두를 신은 날이면 구두가 높아서 발이 아팠을 테니까 슬리퍼를 들고 마중을 나왔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많이 오니까, 늦게 오는 날은 피곤할 테니까,... 이유도 많았다. 김을 챙겨줄 때면 엄마는 그래도 이건 가벼우니까 짐이 안될 거라며 자꾸만 더 넣어줬다. 무겁지 않게 든든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란 걸 알기 때문에 난 늘 마지못해 싸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김은 쉽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김이 종류별로 있었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언니의 야식 도시락을 쌀 때는 김밥김을 꺼냈고, 심심한 된장찌개 백반을 먹을 때는 마른김을 구웠다. 딱히 반찬이 없을 때 세일 때 쟁여둔 조미김 한 통을 꺼내면 밥 한 공기는 금세 비울 수 있었다. 김 하나면 반찬이 좀 없어도 한 끼 부담 없이 먹을 테니까. 엄마는 손쉬운 김을 싸다 줬을 것이다.


김은 가볍고도 쉽다. 심지어 잘 상하지도 않는다. 습기를 피해서 냉동실에 잘 넣어두면 오래오래 잘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김을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집에는 김이 많다. 아마 엄마는 다음 기회에도 내게 김을 싸다 줄지도 모른다. 그때도 난 거절 않고 김을 가져올 생각이다. 김은 무겁지도 않고, 조리가 필요 없을 만큼 쉽고, 오래가니까. 그리고 언제나 맛있으니까. 아 엄마 보고 싶다. (김 김 김으로 시작하는 말은... 김미경)

작가의 이전글 이제 결혼식이 달리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