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예 Nov 01. 2022

단 하나의 능력을 가진다면,  유연성

부드럽고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제 남편은 나에게 단 하나의 능력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지 물었다. 늘 나의 대답은 시간이 좀 걸리고, 그의 답은 준비되어 있다. 그는 보통 자기 답변이 준비되면 내 생각도 궁금해져서 내게도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여보는요?" 그에게 질문을 돌려줬다.


그의 대답: 학습력

그의 대답은 학습력이었다. 언제든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배워서 해결해 나가면 되지 않겠냐는 거였다. 배움은 끝이 없고 결국 잘 학습하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 다운 답이었다. 늘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 배움이 취미인 사람, 배울 것을 찾고 즐거이 배우는 사람이 그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배울수록 배울 것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좀 더 빨리 학습력을 키웠다면 사는 게 훨씬 재밌고 설렜을 텐데. " 깨달음 뒤에는 아쉬운 것들이 먼저 마구마구 생각나는 통에 기분이 잠시 시큰둥해졌다. 물론 금방 회복해서 "그래 앞으로 학습력을 더 열심히 길러보자!"로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학습력은 그의 답이었고, 나도 나의 답을 찾고 싶었다.


나의 대답: 유연성

아침 운동으로 요가 수련을 마치고 다리 찢기를 하는 중에 나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답과 행위가 이렇게 일치할 수가. 고관절이 돌아가지 않게 애쓰면서 척추를 세우고 허벅지 당김을 느끼면서 떠오른 단어는 '유연성'이었다. 단 하나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유연성을 꼽고 싶다. 현재 가장 갖고 싶은 능력이기도 하다.


조율하는 힘

요가 수련과 다리 찢기 모두 몸 전체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예를 들어 다리 찢기를 할 때 그저 다리만 최대한 벌리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등이 휘지 않게 척추를 반듯하게 세우면서 어깨가 안으로 굽지 않게 열고, 골반을 최대한으로 열되 과부하가 되지 않도록 정도를 지켜야 한다. 내 관절의 가동범위를 파악하고 여러 관절과 근육을 예민하게 느끼며 조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좌우 골반이 얼마나 틀어졌는지 척추의 정렬이 맞는지 등 몸의 균형을 좀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일을 할 때도 조율이 중요하다. 규칙과 체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때도 있었다.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고 그에 따라 일을 해나가는 걸 좋아했다. 체계란 불확실성을 줄이고, 질서를 세워서 효율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체계를 만들고, 그에 따라서 착착착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체계'라는 것이 신화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일은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늘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곤 한다. A 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B라는 일이 치고 들어오기도 하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처음에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됐던 일은 거의 없었다. 멀리서 보면 순조롭게 진행 중인 일도 가까이 가서 보면 이런저런 조율을 거치는 중이었다. 결국 체계를 얼마나 정확히 따랐는지보다 치고 들어오는 변수들을 어떻게 조율했는지, 허용범위를 어느 정도로 설정했는지가 중요했다. 유연하게 변수들을 조율해나갈 때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꾸준히 애쓰는 힘

유연성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하루 이틀만 쉬어도 스트레칭을 할 때 당기는 정도가 다르다. 다리 찢기에서는 내가 기억하던 각도만큼 다리가 벌려지지 않고, 요가 동작을 할 때도 원하는 만큼 몸을 비틀 수 없다. 다리를 100도가 되도록 찢는 건 한 달도 더 걸리지만, 90도로 돌아오는 건 사나흘이면 됐다. 이리도 빠르고 쉽게 몸이 굳는 게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그 또한 몸이 기억한다는데 안정감을 느꼈다. 몸이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졌고,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로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며 얻는 긍지는 날 더 부드럽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도저히 운동할 시간이 나지 않는 날도 짬짬이 스트레칭을 한다. 굳어지고 싶지 않아서다. 하다 못해 신호등 앞에서라도 허리를 숙여 바닥을 짚는다. 천장에 닿을 듯이 까치발을 들고 팔을 쭉 늘려 기지개를 켜보기도 한다. ‘5만큼 굳어질 걸 2로 줄인 거야.’ 생각하면서 몸을 비틀고 늘린다. 몸도 마음도 똑같다. 굳어지는 건 쉽고 유연함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매일 굳어진 정도를 인지하고, 풀어주고, 늘려주어야 한다. 이대로 뻣뻣해질 순 없으니까. 몸도 마음도.



*사내글쓰기 모임 에서 함께 정한 주제 '단 하나의 능력을 가진다면?' 으로 글을 썼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기대한다, 사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