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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학사 Oct 09. 2023

네버엔딩 블라블라 - 후드

갑자기 비를 만나다

움베르트 에코의 대표작이라면 단연코 《장미의 이름》이다.


소설을 읽으면 느끼게 되는 대표적 이미지는 후드를 덮어쓴 수도사이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때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후드를 쓰고 다녔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깊어졌다.


여름옷을 정리하고, 새 계절에 맞춰 옷을 꺼내니 한결 같이 상의에는 후드가 달려있었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 숨기고 싶은 인간인가 싶었다.


후드가 달린 바람막이를 꺼내 들고 저녁 산책을 나섰다. 후드는 내 발걸음에 맞춰 어깨에서 들썩였다. 빨간색 후드라서 엄마 심부름 갔다가 늑대에서 잡아먹힌 빨간 후두의 소녀 이야기도 문득 생각났다.


그랬다.

후드를 써야 할 어떤 이유도 없는 10월의 어는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면서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졌다. 낮이라면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 차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밤하늘은 알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결국 나는 후드를 쓰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나는 젖은 바람막이에 빗물을 털어내고, 옷걸이에 후드를 이용해 걸었다.


내 그림자처럼 걸린 모습을 나는 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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