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아이, 그날의 아버지

두 개의 이름, 하나의 풍경

by 준희최

아이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서툰 오늘의 내가 있다.


늘 화가 나 있던, 두려웠던,

어제의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두 남자의 시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 하나


나는 이제야,

그 벽 앞에 멈춰 서서

아주 오래된 풍경을 들여다본다.




누군가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따뜻한 기억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단어는 오랫동안,

어색하고 무거운 감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분만실 앞에서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순간도,

세상을 찢을 듯 터져 나온 첫 울음을 들었을 때도,

나는 그저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살결이 아직 붉고 연약한 그 작은 생명을 품에 안고 조리원을 나서는 길.

세상의 중심에 선 기분보다는,

대사도 역할도 모른 채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던져진 배우 같았다.


나는 ‘아빠’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그 이름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랐다.

벅차서가 아니라 어색해서,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낯설어서.


아이를 품에 안은 내 손끝은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허공을 헤맸다.


그렇게 허둥대는 내 모습 위로,

문득 수십 년 전의 다른 남자가 겹쳐졌다.




내가 기억하는 젊은 날의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기억이 또렷해지는 초등학생 무렵부터,

그에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려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의 한마디 말, 무거운 표정 하나에

나는 늘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관계.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를 원망했다.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배우지 못해,

나 역시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오래도록 체념 속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날,

그도 처음 ‘아빠’가 되었던 그날은 어땠을까.


그 역시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이 막막한 무대 위에 섰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서툰 한 명의 남자.


내가 아이를 안고 서 있던 이 막막한 순간처럼,

그도 한때는 떨리는 손길로 나를 안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었을 그 마음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몰라 그저 머뭇거렸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그를 향한 이해나 용서가 아니다.

그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비로소,

다른 한 아이의 아들이었던 나를 마주 보는 일이다.


그의 불완전함과 나의 깊은 원망을,

그가 건네지 못한 사랑과

내가 받지 못한 위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


나는 여전히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을 모른다.

계속해서 길 위에서 걸음을 더듬고,

수없이 어디로 갈지를 묻고 돌아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어색하고 낯선 마음의 끝에서,

나는 아주 조금씩,

그와 다른 길을 걸어보려 한다.


내 품에 안긴 따뜻한 온기 속에서,

나는 다른 날 같은 모습의 아이와 아버지를 떠올린다.


시린 아픔과 서운함,

그리고 아주 희미한 애틋함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나란히 서 있다.






작가의 말


아이를 향한 사랑은 날마다 깊어집니다.

나는 이제 마음 한 켠에 깊게 드리워진 그늘을 마주봅니다.


모순된 감정의 실타래 앞에서,

오랫동안 길을 잃고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되어가는 여정 속에서,

내가 마주해야 할 첫 번째 풍경이

바로 '한 사람의 아들이었던 나' 자신이었음을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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