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

나의 첫번째 삶에게

by 준희최

어떤 화해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어떤 강은, 결코 건널 수 없다.


나의 두 번째 삶은

그 불가능성을 끌어안고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한동안,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낯선 계절이 찾아왔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지신 아버지는

느닷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평생 들어본 적 없던 속내를 털어놓으시는 날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 어색한 변화가 싫지 않았다.

‘나이가 드시니 이렇게 관계가 바뀌는구나.’

어쩌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아내의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오빠, 어떻게 해. 아버님이 또 많이 화가 나셨어.”


아버지는 나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전화를 걸고 계셨다.

아내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다,

두 아들을 두고 비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아버지는

"니가 뭔데 내가 내 아들한테 뭐라하는 것까지 간섭하냐!"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했다.


퇴근 후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내 아내의 진심을 설명드리고 노여움을 풀려고 애썼다.

아내의 진심어린 말은 이미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속에서

뒤틀린 모양이 되어 있었고,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건방지고 오만한 말로 바뀌어 전달되고 있었다.

차마 계속해서 들을 수 없는 말의 폭격 속에 나는 끝내 폭발했다.

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따졌다.

“그 말에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아내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게 아니잖아요!”


욕설과 함께 끊어진 전화는

일순간 내 마음과 모든 세상을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고,

내 전화는 받지 않으셨다.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은 고통에 휘청거렸다.

희미하게나마 빛이 보인다고 믿었던 터널은,

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갇혀 있던 동굴이었음을 깨달았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낡은 일기장에서 본 젊은 날의 꿈.

어린 나를 위해 당신이 밥을 굶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

술에 취해 “나도 힘들다” 말하던 밤의 흔들림.

나는 그 인간적인 조각들을 그러모아

‘아버지’라는 거대한 상처를 꿰매보려 했다.

하지만 상처는 번번이 다시 터졌고,

소통은 늘 일방적이었다.


나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 가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거대한 남자를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이었음을 받아들였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억지로 본가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버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연을 끊을 각오를 하신 듯 나를 외면했다.


잃어버린 수개의 시간은 모두 나의 책임이었다.

나는 애써 미소지으며 다시 말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는 아내는 한숨조차 마음대로 쉬질 못했다.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확신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의 운명의 굴레는

영원한 것이구나.

나는 이 간극을 결코 메울 수 없다.


이것은 오해를 풀거나 화해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는 나의 모습으로,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 처절한 깨달음의 순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짓누르던 무언가로부터

오히려 놓여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날 이후, 역설적으로

아버지로 인한 마음의 흔들림이 줄어들었다.

그를 향한 애증과 연민,

분노와 기대를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그를 바꾸려 애쓰는 대신,

나는 내 아이들의 손을 더 굳게 잡았다.




현실은 이야기보다 복잡하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이해하고,

부둥켜안고 화해하는 결말은

내 현실에는 없었다.


아버지도 이제 연세가 드셨다.

반평생 하루도 빼놓지 않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여전히 단단하시지만,

얼마 전 받으신 심장 시술처럼

안에서부터의 균열은 숨기지 못한다.


아버지는 약한 모습을

결코 말로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여전히 강한 척하는 그 모습 너머의,

시간 앞에 속수무책인 한 인간의 쓸쓸함을.


그것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왜 우리는 이것에 대해

서로 애틋함을 표현할 수 없는지를.


그 사이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 사랑과 상처, 모든 복잡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이 나였고,

그것이 투명한 슬픔의 향기였다.


나는 첫 번째 삶의 결말을 아름답게 바꾸려 했지만,

우주를 바꾸고 세상을 재창조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삶을 산.

첫 번째 삶은,

이제 그냥 그들의 세상에서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

내가 나의 두 번째 삶을 새로 써나가면 되니까.


그날,

나는 평생을 미워하고 사랑했던 아버지를

내 마음속 첫 번째 삶의 자리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비로소,

가벼워진 어깨로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소란스럽고, 평범한

우리의 자리로.






작가의 말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해방의 기록입니다.


모든 관계가 화해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끝내 아물지 않고,

어떤 사람은 우리의 마음에서조차 닿을 수 없는 섬으로 남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섬에 닿기 위해 애썼습니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결국은 사랑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어떤 관계는 놓아주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강을 건널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 강을 마주선 채,

돌아서는 용기가 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듭니다.


혹시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 애쓰고 있지 않으신가요.

당신에게 나의 고백이 두 번째 삶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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