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너의 것

by 준혜이

평화롭고 조용한 날들이었다.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할 때,였는지 조용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였는지 십 몇 년 전 학교가는 전철 안에서 자주 보았던 간첩 신고 스티커가 불쑥 떠오르는 날의 불안만 빼면 더없이 완벽한 그런 날들을 우리가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소리치지 않고 아이들을 울리지 않는 날들이 더해갈수록 내가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서서히 망치다 끝내 아이들의 인생까지 망쳐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라는 나의 게으른 마음은 우리를 자주 웃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게으르다고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나의 손길이 바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둘째의 짜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밖에 나갈 때마다 아이의 물통 챙기기를 잊지 말아야 했고, 그랬는데 둘째가 내 가방을 뒤져서 물통을 집에 두고 나올 수도 있다고까지 예상해서 차에 타기 전 집 안을 한 번 확인했어야... 둘째는 물통이 없는 걸 알고 차 앞좌석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누나를 태권도에 내려준 다음 집에 다시와서 물통을 찾자는 내 말이 너무 나빠서 오줌을 싸야겠다고 선언하더니 아이는 그렇게 했다. 기저귀를 다섯살 때까지 떼지 말 걸, 평정심을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애처로운 마음 속 비명이 들린 건 지 딸아이는 똥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위로를 남기고 운동을 하러 갔다.


천천히 길을 따라 움직이는 차 안에서 핸들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나는 뒷통수에도 얼굴이 있는 사람처럼 둘째에게 소리치고 화를 냈다. 아이도 나에게 지지않으려는 듯이 큰소리로 울고 소리쳤다.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을텐데. 나는 자신의 목마름을 오줌으로 복수한 아이에게 사과받고, 아이를 쓰레기통에 갖다버리겠다고 말한 것을 용서받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둘째를 제대로 훈육할 상황만을 기다렸다.


딸아이가 한 쪽 눈을 가리고 둘째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조용히 둘째를 들어서 이층 화장실로 올라갔다. 누나가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때렸다는 아이를 나는 잘 타이른 다음 4분 정도 아이를 화장실에 혼자 둘 계획이었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둘째는 그 안에서 폭주했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나는 1분만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갑자기 욕조에 물 트는 소리가 나더니 촥하고 화장실 문 밑으로 물이 흘러나왔다.


벌거벗은 둘째가 바가지를 무기처럼 들고 서서 울고 있었다.


웃으면 안되는데 하면서 나는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둘째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잘못했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냥 화내는 엄마가 무섭고 벌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을 뿐. 그래도 그 누구도 때리면 안된다고 내가 아이를 때리지 않고 잘 가르치고 싶다.


우리는 다시 평화롭고 조용한 날들을 세면서 지내고 있다.


사진은 네이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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