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을 전화를 걸어 목소리로 전하는 것보다 문자로 보내는 데에 익숙해졌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끊임없이 들을 수 있어서 좋고, 해야할 말을 고르는 시간이 생겨서 마음이 놓인다. 버스를 기다릴 때나 지하철 안에서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조용히 문자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어서도 우리는 목소리 대신 손가락으로 할 말을 세상에 퍼뜨린다. 스마트폰 스크린 위에 적힌 대화에서 생각없이 내뱉은 말로는 그릴 수 없는 가지런함을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날이 갈수록 소리내어 말하기가 꺼려지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서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함께 모여앉아 있던 우리를 때 이르게 회상하기 시작한다. 연극이 끝난 뒤의 배우처럼 또는 관객처럼 우리가 했던 말, 우리가 들었던 말 모두를 되새겨보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아무래도 오해를 살 만한 말을 한 것 같아 후회가 되면 그 마음을 문장으로 만들어 친구에게 전송한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같이 보낸 시간과 공간을 마무리하는 대화를 나누어야 안심이 되는 사이가 늘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의 질서는 바로 잡히지만 지나간 시간은 실제보다 더 빠르게 우리 곁에서 멀어져간다.
만나면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실없는 이야기나 나누게 되지만 가끔씩 가족에게서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한 속마음을 문자로 받으며 살고 있다. 왜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건 대답이 중요하지 않은 독백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순간 문장이 되지 못한 마음은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되어 내 주위를 떠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부모만 어른이였을 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 지금까지 우리의 마음 사이에는 서로에게 들리지 않는 말이 오고 간다.
상대방이 물어보는 말에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으며 지낸 하루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불면은 실패한 대화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대화가 시험은 아니지만 나는 제대로 된 이해없이 아무 대답이나 하면서 우리의 대화가 만드는 공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성의없이 말하면서 이해받길 바라는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대화자가 되어야 한다. 목소리 높여 말하는 도중에야 알게 되는 나의 진심에 놀라 하던 말을 멈추고 문장을 만들어 상대에게 전하고 싶던 그 순간이 모두 모여 잠 못 이루는 밤이다.
머릿 속을 서성이는 생각과 마음을 헤매는 감정을 덜어내고 난 나머지가 무엇인지 우리는 실패한 소통에서 배운다. 때로는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고, 때로는 모두가 원하는 말끔한 마무리가 있을 수 없다는 인정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여러 사람들과 나눌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서로를 통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서로에게 해야할 말만 하고마는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감과 위로 속에 혼자인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