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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Diary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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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Jul 16. 2020

Antifreeze

검정치마

 발코니에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책을 읽는다. 바닥에 대고 있던 팔꿈치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몸을 돌려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눈이 부시다. 순간적으로 인상이 확 찌푸려지는데 마치 얼굴로 격한 운동을 한 기분이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하면 이렇게 얼굴에 힘을 주면 되겠다. 이런 눈부신 새끼, 퉤. 눈을 감는다. 붉은 기운 속을 잠시 헤매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덮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나 그 자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런 눈부신 새끼.

 에어컨 바람의 찬 기운은 긴 옷으로도 막을 수 없다. 몸 속에 추위를 심어 우리가 희망하는 그 온도로 나의 체온까지 낮추는 바람을 피할 수는 있다. 날이 갈수록 발코니에서 누워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구름이 바람에 모양을 바꿔가며 하늘을 움직인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지 고민하다가 검정치마의 노래를 튼다.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그러면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Antifreeze, 검정치마)

 어느 새 한 소년이 다가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나에게서 바다 향기가 난다고 말한다.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감고 있던 눈만 뜬다. 아니 이토록 눈부신 게 내 새끼.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거야." (Antifreeze, 검정치마) 소년에게서 벌써 땀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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