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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Diary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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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Oct 15. 2020

부모, 자식


2004.05.06 00:00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가 꺼려진다면, 내가 우스워질까? 손에 든 카네이션이 초라해 보여 쓴웃음을 지었어. 다 큰 자식을 가진 부모에게 어버이날이란 세월의 무서움과 사람의 빠른 성장, 그리고 약간의 쓸쓸함과 약간의 성취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식들에 대한 뿌듯함이 느껴질, 복잡한 날 일 듯해. 내가 부모가 된다면 이런 감정들을 말로 다 표현 못하겠지. 나약한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어, 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내 이름이 신나는 노래처럼 들리는 그런 기분 좋은 날이었어.


2020. 10.14 12:00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나는 카네이션을 선물로 받는다. 내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는 다른 집 아이가,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내 아이로부터.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받던 날, 나는 꽃을 내미는 아이에게 그걸 나한테까지 줄 필요는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잖아요, 웃으면서 카네이션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그때는 내가 스스로 엄마라는 걸 매일 온몸으로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도 내가 엄마로 보인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살게 될 줄 몰랐다. 그래서 우리 사이를 바로잡을 기회는 흔할 줄로만 알았다. 한 집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각자 조용히, 서로를 밀어내는 생각은 다 들리게,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다. 게다가 내가 기억하는 건 엄마, 아빠가 애써 잊으려 노력한 기억이고, 엄마, 아빠가 기억해주길 바란 시간을 나는 잊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행복을 바라고, 부모로서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데 시시때때로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 관계가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지속될 수 있을 리가 없는 거다.

   

   나를 잠깐 알았던 사람이 내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누군가 내 소식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반응이다. 하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괴로워하던 시절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부모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내가 나중에 어떤 엄마가 될 것인지를 상상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로 표현하기 어렵도록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를 나약한 엄마라고 평가 내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한다면 울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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