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서 17년간 애벌레로 살다가 때가 무르익어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달고, 땅 위로 솟구쳐 나와 짝짓기를 해야 해! 무전 끊기는 소리를 끊임없이 내며 우는 수십억의 매미와 함께한 짧은 여름이 끝나간다. 운전을 할 때마다 차 앞유리로 날아드는 매미를 쳐 죽이는 일이 서서히 줄어들고, 키 작은 나무의 잎사귀마다 까맣게 더덕더덕 붙어있는 매미를 멀리서 발견하고 나무 가까이 다가서는 일도 이제는 드물어졌다. 매미들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마치고 떠나는지는 17년 뒤면 시끄럽게 알게 되겠지만 짝짓기 잘했니, 알 많이 낳았니, 경비 아저씨가 나무에, 잔디밭에 약 치던데, 나는 괜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천적이 많은 매미는 종족 보존을 위해 그 종마다 5년, 7년, 13년, 17년 주기로 땅 위에 올라온다고 한다. 천적과 마주칠 기회를 줄이려고 천적의 성장 주기를 비껴가는 소수를 주기로 세상에 나오는 거라지만 올여름 우리 동네는 매미 소리만큼 새소리도 시끄러워 매미가 땅 속에서 바랐던 만큼은 천적을 피하지 못한 것 같다. 매미 애벌레 중에서 다른 애벌레보다 일찍 성숙한 애벌레도 정해진 주기를 꼭 지켜 다른 매미들과 함께 땅 속에서 나온다는데 그 이유 역시 종족 보존, 천적의 공격에 수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하여 매미 수컷은 짝짓기를 마치고, 암컷은 알을 낳고 나서 죽는다. 이렇게 대하드라마적으로 알에서 태어난 유충들이 땅을 파고 기어 들어가 17년을 산다고 하니까 나는 땅을 한 번 파보고 싶어 진다. 매미의 정체성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 날개가 아닌 다리에 가까울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발 밑에 17년 세월을 기다릴 종족 보존의 본능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아니, 본능에 뭔가 기계적인 면이 있는데?
아침 산책길에 발에 차이는 살아있는 매미, 죽은 매미를 남편은 견딜 수 없어했다. 벌레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남자가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나는 남편이 벌레를 보고 소리치며 도망치는 걸 처음 봤을 때 내가 그런 남자를 재미있어한다는 걸 알았다. 남편에게만은 지뢰밭이 되어버린 산책길에서 짝짓기를 위해 17년을 기다리는 애벌레의 마음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해봤다. 애벌레가 생식 본능에 사로잡혀 폭발하기 일보직전에 몸에 날개를 다는 걸까, 나는 20년도 넘게 걸렸는데 17년이면 빠른 거지. 아무 생각이 없을 거 같은데.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내가 땅바닥을 기고 있는 매미를 집어 들자 남편이 꺅꺅거리면서 빠르게 뛰어 멀리 도망쳤다. 나는 매미를 하도 많이 잡아봐서 이제 수컷과 암컷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말이다.
나에게 굴욕적인 사진을 찍힌 남편이 회사일을 하다가 카톡으로 뉴스 하나를 보내왔다. 우리 집 근처에 17년 매미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자신은 매미를 만질 수는 없지만 먹을 수는 있다고 해서 나는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우리는 좋거나 나쁘거나 어찌 되었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살아야 하는 관계 아닌가.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남편에게 매미를 토핑으로 올려주는 피자 가게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너는 매미 수컷 암컷을 한 마리씩 잡아다 내 손바닥 위에 올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남편이 17년만 기다려,라고 하진 않았지만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우리는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은 뒤에 바로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비극인가.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