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집으로 와 13화

운전만 안 해

by 준혜이

엄마의 잔소리, 남매의 말다툼, 액체 괴물의 습격이 무작위로 반복되는 일주일을 보내고 첫째는 월요일부터 집 근처 공연장의 연극 캠프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방학 때 놀아도 돼,라고 딸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속으로 불안해하지 않는 내가 될 순 없었지만 나에게도 딸아이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란 것이 있으므로 괜찮다. 자신감이 없어? 자신감을 연기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무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을 연기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배우면 돼. 하지만 사는 동안 내 앞에서 너는 단 한순간도 그럴 필요가 없단다. 둘째는 나와 집에서 빈둥거리기를 선택하고 후회하는 것 같다.

아침 8시 30분. 아이들과 집 밖을 나서니 한여름이 우리를 숨도 못 쉬게 꽉 끌어안았다. 스마트폰 화면에 오늘 우리 하루의 극본 지문처럼 찍힌 폭염주의보를 읽고 우리는 개도 아닌데 입을 벌리고 혀를 길게 빼고 차고로 걸어가 차 문을 열었다. 차 안에서 무더위로 끓고 있던 공기가 우리 모두의 얼굴을 강타해 악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우리는 자동차의 열린 문 앞에서 다급하게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겨우 평정심을 연기하며 아이들에게 지금 서 있는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외쳤다. 그리고 1분 뒤 우리는 차 안을 울리는 박지윤의 목소리를 감상했다. “듣고 싶은 말이 있었어. 하루하루 후회 속에서 … 점점 무뎌지는 마음이 사실은 두려워 조금씩 널 아파하지 않게 해. 내게 널 가득 채웠던 마음이 다인 걸 잊고서 계속될 기억들이란 건 괜찮을까” (고백, 박지윤) 아니. 그래서 폭염주의보를 뚫고 달리는 자동차 안에는 두 팔로 스스로를 한 번 껴안아보게 만드는 정서적인 한파가 몰아쳤다. 헥헥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요즘 백범일지에 빠져 지내는 내가 김구를 생각했다. 누가 나에게 혹시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보면 제 이상형은 김구 선생님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김구 선생님께 빙의되어 이 한 세상 살다가고 싶습니다. 나라를 위한 독립운동은 아니어도 지금껏 대충 살아온 저의 인생에서 독립하는 운동을, 까지 생각하고 핸들을 붙잡고 있던 오른손을 들어 지휘자처럼 허공에 휘저었다. 그때 내 손가락에 닿은 것은 에어컨이 식힌 공기가 아니라 박지윤의 목소리, 고백의 멜로디, 가사였다.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속도에 발을 댄다. 그 순간 떠오르는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에 가까운 연예인이 누구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던 때. 지금 생각나는 연예인 없는데, 하고 대답하면서 내 앞에 앉은 남편과 그만 두 눈이 마주쳐 비겁하게 일본 앞잡이보다 더 악랄하게 내 남편이 바로 내 이상형이오, 해버린 기억. 김구 선생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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