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집으로 와 14화

패닉 바잉

by 준혜이

집을 샀다.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에 밟히던 집. 부동산 앱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대충 훑어보고 별로여서 내가 직접 가볼 필요도 없겠다 생각한 집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진만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집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던 집에 실망하고 별 기대 없이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어? 그 순간 나는 이 집으로부터 볼 수는 없지만 알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내려받았다. 마치 접신이 된 듯이.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집을 살뜰히 돌보지 않은 게 분명해. 여자가 없는 집이야. 이 집의 이름은 아저씨가 될 거야. 우리는 아저씨를 더 젊고 활기차게 바꿀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저씨를 욕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우리는 아저씨를 사랑할 거야.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그 디테일에 고통받는 존재는 분명 우리, 사람이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살기로 결정하던 날, 우리는 사실 다른 아파트로 보증금을 내러 가던 길이었다. 남편이 운전을 하다가 도로 옆 잔디밭에 꽂혀있던 럭셔리 아파트 싸인을 발견했고, 우리는 그 싸인을 따라가며 구경만 한 번 하고 말자, 했다. 하지만 모델 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어?, 바로 그 자리에서 원래 들어가서 살려고 했던 아파트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월세 구두계약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이렇게 일을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나면 끝 모를 불안에 떨게 되는데 그날은 우리가 그 혼돈한 감정에서 금세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월세 계약서를 쓰고 있는 동안 어느 가족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어떤 특정 모델의 집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아파트 직원이 우리가 사인하고 있는 계약서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집을 볼 수는 있지만 그 모델의 마지막 집이 지금 나갑니다,라고 무심하게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끝없는 욕심과 반복되는 실수 그 자체가 나라는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충동적이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다른 사람의 좌절된 희망을 나의 승리로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보스턴 집에 진지한 관심을 보인 사람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부동산 중개인을 대동하고 우리와 함께 물속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수영하는 물고기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더 기다렸다 집을 사려고 하다가 아, 그냥 렌트해, 했을지도 모른다. 약간의 흥분 상태로 결심한 우리의 오퍼가 수락된 날, 우리는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입만 열면 이거 집 더 싸게 살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부동산 중개인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도 돼? 그 집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 우리가 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있는 거지? 사기당했네, 했다.


8월부터 당장 살 곳이 필요한 우리는 일단 일을 벌였고 인정사정없는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에 압도당하지 않으려 서로 말을 아꼈다. 그 불안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부동산 중개인, 변호사, 대출 전문가, 홈 인스펙터들과 악마의 개새끼 같은 디테일, 신의 자비로운 디테일 사이를 오고 가며 이혼은 하지 않았다. 그건 남편을 향한 시아버지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집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네!!!! 하지만 이 말은 내가 들어야 할 말이기도 했다. 공간에 뜻 모를 연민을 느끼고 여자 없이 살아온 전 주인의 삶이 궁금해서 상상하길 멈출 줄 모르는 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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