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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Sep 25. 2021

산책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형형색색의 버섯을 생각해요.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 생긴 습관이다. 올여름에 비가 자주 내려 사과가 풍년이라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앞뜰과 뒤뜰에 나온다는 기척도 없이 불쑥 솟아오른 버섯을 떠올리며 나는 버섯 이야기를 꺼냈다. 사과를 따러가는 게 어떻겠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도 어떤 버섯은 집에 갖고 들어와서 먹어도 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이러면 나중에 언니랑 사과 농장에 가는 게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사과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있잖아요, 사과처럼 생긴 버섯도 봤어요, 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내 말을 말릴 수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저마다 제 이름이 있다. 이름 없는 것을 찾아내 규칙에 따라 이름 붙이기를 일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애플 머시룸, 브레드 머시룸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버섯을 목놓아 부르다 답답해진 나는 아마존에서 버섯 도감을 주문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시인은 노래하지만 나는 버섯이 우리에게로 와서 먹이가 되어주기를 바라다 말았다. 왠지 내가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때마침 도착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버섯 도감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진 전문가가 찍은 버섯은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우리 집 주변에 깔린 버섯은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이었다. 마치 인간 도감에, 이런 게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여성의 표본으로 실린 김희선의 얼굴과 거울 속 내 모습의 차이랄까.


   백설 공주를 확실히 죽이고 싶었다면 공주의 새어머니는 사과를 닮은 독버섯을 준비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일곱 난쟁이는 물론이고 왕자까지 새어머니의 차지가 되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아직 그토록 치명적인 버섯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동물들이 한 입 뜯어먹은 것처럼 보이는 버섯이 보이면 아니, 우리도 이거 먹어도 되는 거 아니야?, 엄마, 안돼! 독버섯을 먹고 그 옆에 백설 공주처럼 쓰러진 다람쥐를 볼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생존 본능만으로 무장한 다람쥐가 독버섯을 먹을 리는 없잖아. 교통사고를 당하는 다람쥐가 독버섯을 먹는 다람쥐보다 흔하겠다.


  아이들과 동네를 산책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버섯을 구경하고 그보다 적은 수의 버섯을 괜히 발로 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았는데 문득 버섯을 소파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겠네. 이사했다고 새로 장만한 소파를 손으로 쓰다듬는 촉감과 소파에 몸을 푹 파묻을 때 온몸으로 퍼지는 버섯을 걷어차던 발 끝의 감촉. 앙. 그렇다면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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