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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Sep 23. 2021

두 사람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긴 머리를 묶으며 맨발로 계단을 내려간다. 거실을 채우고 있는 서늘한 아침 공기를 발걸음으로 휘저으면서 발코니 문을 연다. 아직 입김은 부르지 않는 계절의 바람이 집안으로 쳐들어온다. 이런 온도에는 담배 연기가 잘 어울리겠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길을 걷다 누가 피우는지도 모르는 담배나 대마초를 우연히 간접흡연, 자연스럽게 냄새 는 호흡을 하곤 했는데.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담배.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스컹크. 어른만 한 몸집의 아이들이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곳에 한데 모여 옛날에 우리 엄마는 대마초를 스컹크라고 불렀어, 낄낄거리는 장면이 눈에 선한 좋은 아침.     


   어제 함께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보스턴에 온 지 이제 겨우 3주가 되었다는 두 명의 여성을 만났다. 그 둘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마스크를 쓴 두 사람이 말을 하다가 서로를 마주 볼 때 그들의 눈빛이 만나던 자리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를 뿐. 우리는 서로의 나이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말은 없어 나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내 아이들의 나이를 밝혔다. 두 사람이 셋이 되거나 넷이  않는 관계는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 건 언제였지. 밥 먹으러 가자.


   우리가 앉은 식당 테이블 옆에 두 명의 여성이 탕수육과 볶음 짬뽕을 시켜놓고 소맥을 마시고 있었다. 한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아이처럼 맥주잔을 들고 입맛을 다셨다. 그 여자와 마주 앉은 여자가 술잔을 든 여자 사진을 찍어주었다. 얼굴이 하얘서 빨간 립스틱이 무척 잘 어울렸다. 여자의 사진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겠지.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 한 남자를 위한 게 분명해. 빨간 립스틱이 점점 술에 취해갔다. 볼과 귀가 빨개지고 말 끝마다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지금 네가 같이 있어야 할 사람은 저 여자가 아니야. 빨간 립스틱은 취기로 용기를 충전해 해가 지기를 기다려 취한 목소리로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겠지. 거기 지금 어디야, 내가 그쪽으 갈게. 서로 멀리 떨어져 같은 노래를 부르다 후렴구에서 만나 Fine. 이제 더 이상 구경꾼은 필요 없어. 남편이 말했다. 나도 쟤네들처럼 소맥을 마실 수 있다면, 탕수육에 순대국밥만 먹는 게 아니라 소맥 한 잔곁들일 수만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난 고속도로 운전은 안 해.


    태권도장에서 아이들 운동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아이의 엄마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있어 우리는 실제로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엄마가 미인이라는 걸 안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를 공손히 묻는다. 언니는 자신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나는 또다시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와 친구가 될 것 같아 아, 이런 하면서 실망했다. 애 나이로 가죠, 저를 언니라고 부르세요. 언니가 손바닥으로 내 등짝을 치며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가 그동안 어쩔 줄 몰라 방황하다 외면해버린 단 둘의 세계마다 이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면 여전히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었을 텐데. 여보세요. 야, 꺼져. 멍멍


고스트 파이프 (Ghost pipe) 징그럽게 생겼지만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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