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어느 날 저녁, 남편이 매주 목요일 밤마다 배드민턴을 치러 다녀도 되냐고 내게 허락을 구한다. 한 동네에 사는 이전 직장 동료와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그분의 취미인 배드민턴에 영업을 당하고 들어온 것이다. 매일 달리고 토요일 아침에 동네 축구를 뛰러 나가는 것도 모자라 도대체 왜 이지경으로 중년의 위기야, 구박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네 한계를 보기까지 응원해, 그러려무나.
누군가 자신의 취미 생활에 대해 속없는 사람처럼이 말 저 말늘어놓아가며 상대방에게 한 번 동참해 보기를 넌지시 권할 때, 그 초대를 내 일상에 당신을 포함하고 싶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가정을 이루고그 안에서 한창 자라나는 아이, 들과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친구가 필요할 때마다 시간을 따로 내어 평소와는 다른 차원의 우정을 차차 키워나갈 여유는 드물잖아.그러니까 늘 서로에게 상기시키지 않아도 약속된 시간과 공간에 네가 나와 상관없이 꼭 있어준다면.
남편은 목요일마다 동네 중국 아줌마들한테 셔틀콕으로 실컷 처맞고 수치심에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 어느 실력자도, 예를 들면 그의 이전 직장동료, 남편과 같은 편이 되면 패배만 겪어 그와 배드민턴을 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취미 생활에도 실력에 따라 엄연한 계급이 존재해 남편은 그중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허공에다 배드민턴 채를 속절없이 휘두르는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무룩해져만 가는 그의 얼굴을 두고 보다가 불현듯 배드민턴 채를 등 뒤에서 뽑아 들고 무사처럼, 내가 복수해 줄게, 집 밖으로 뛰쳐나갈 순 없겠지. 축구하러 나가면 왕년에 대학팀 선수로 뛰었던 아저씨들한테 치이고, 달리는 동안에는 스스로가 언제나 걸림돌이고 그래서 네 중년의 위기는 흥미진진해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