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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메달

by 준혜이 Jan 07. 2025

    동네 축구팀 아이들에게 실내 축구 리그 우승을 선사하기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린 다만 애들을 차에 태워 경기 시간에 맞춰 축구장에 도착해 공을 차는 아이들을 향한 진상에 가까운 응원을 멈추지 않을 뿐. 그러나 과연 그뿐이었을까.


    남편은 실내 축구 경기 실시간 중계와 녹화본을 구독 중이다. 그걸로 우리 애들 경기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보호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지만 주로 다음 경기 상대의 이전 경기를 엿보며 상대 전력을 분석한다. 열 살 소년 축구는 뛰어나게 잘하는 선수 하나가 무자비한 다득점으로 소속팀의 연이은 승리를 이끌기도 하므로, 그런 애를 찾아내 우리 팀 수비수를 그림자같이 붙이려고.


    이 한 게임만 이기면 우린 우승이야. 평소와 다르게 경기 시작 30분 전 축구장 에 모인 애들 앞에 화이트보드를 세워 놓고 떠드는 남편과 골키퍼의 아빠는 진지하다. 상대편 20번 선수를 잘 막자. 쟤네 수비는 우르르 몰려다니니까 공격수들끼리 꼭 패스하고. 코치들에게, 친구 아빠들한테 이런 지시를 받은 우리 애들은, 저기 20번 지나간다, 20번 저기 있다, 20번 막아, 로 화답한다. 쉿, 이제 그만.

 

    우리는 우리 팀 애들 모두에게 가로막혀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20번이 경기가 끝난 뒤 주차장에서 엄마한테 칭얼대며 차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목격한다. 스포츠맨십과 치사함 그 사이 어딘가에 모여 서서 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찍은 소년들의 단체 사진 바깥에 선 우리는 사진마다에서 눈 감고 웃고 있는 아이를 하나씩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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