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장인 어르신께서 친히 하사하신 디지털 깔깔이를 현관문 앞에 서서 걸쳐 입던 남편이 한쪽 팔을 마저 소매에 넣다 말고 그대로 멈춰 서서는, 나, 트럼프 서포터처럼 보여? 그 순간 내 두 눈에 그는 열혈 트럼프 지지자 혹은 일론 머스크. 야, 빨리 벗어, 벗어.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두렵게 만드는가. 우리가 뭘 제대로 알긴 알고 이래. 우리에겐 투표권도, 이 나라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 말고는 뭐 아무것도 없는데. 아, 그래서 그렇구나.
이민 정책에 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사실이 무엇이건 간에 한 나라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차릴수록 유령스럽다. 애써 일군 생활 기반이, 합법적인 서류를 동반하지 않는 이상, 반투명에 불면 날아갈 듯 연약하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떠나서는 살아갈 방법이 없는 사람들에게, 아니, 여기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온 애들한테까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 돼, 안돼?
매사추세츠 어느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연말에 출국할 예정이라면 트럼프 취임 전 미국으로 돌아오라 당부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미 학생 비자를 받아 미국 체류 중이었을 유학생들의 입국 심사마저도 불안하게 만드는 권력이란 과연 그런 데다 낭비해 버릴 만한 장난일까. 나 역시 이 얼굴로는 내년 초엔 국경을 함부로 넘나들 수 없을 것만 같다 느끼고. 또다시 이 지경이 되어서야, 정치가 개인적 일상의 안위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쳤군요, 기분 나쁘게 깨닫고 마는 우리에겐 투표권이, 그러니까 시민권이 필요해. 투쟁, 깔깔.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