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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와 소년

by 준혜이 Jan 14. 2025

    소년은 이발하지 않는다. 두 해 전 뉴저지 어느 한인 미장원에서 귀를 다 덮을 만큼 머리 길이를 줄인 것이 가장 최근의 두발 단속이다. 이제 곧 허리까지 내려올 듯한 까만 생머리 휘날리며 사소하게 거슬리는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소년에게 불만은 없다. 다만 아침마다 어제 쓰고 제 자리에 두지 않은 빗을 바쁘게 찾아다니는  꼴만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달까.

    가끔 소년은 공중 화장실에 홀로 당당히 입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축구장에서 머리를 뒤로 하나로 묶은 소년이 내게 다가와 아빠 어디 갔어. 여자로 오해받을 수 있어 화장실에 아빠랑 같이 가야 한다면서. 우리 대화를 엿들은 소년의 친구 둘이 마치 경호원처럼 소년 양 옆에 붙어 소년을 친히 화장실로 모셔 간다. 어느덧 축구 경기는 시작되고 상대편 코치가 큰 소리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막 외쳐대는 거지. 저 여자애를 막아!

    타인과의 일시적이고 우연한 만남에서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서로에게 무슨 말을, 어떤 마음까지 기대할 수 있나,를 긴 머리 소년과 여기저기 함께 돌아다니면서 고민한다. 머리칼은 머리칼일 뿐이라고 말은 해도,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머리 길이는, 나를 처음 본 상대방에게 나와의 의사소통 방식을 즉시, 확신 속에 설정할 시각 정보이기도 해. 소년이여,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머리카락을 기르는가. 따뜻해. 긴 머리를 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축구할 때 여자애 막으란 소릴 들으면 순식간에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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