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쓰는 여자

by 준혜이

워드 페이지를 열어놓고, 여자는 한참을 멍하니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난방을 빵빵 틀어놓은 그녀의 방이지만,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뒷모습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도 부지런히 계절이 오고가야 꽃도 품고 낙엽도 쓸고 할텐데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겨울인 것 같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의 어깨가 티 안나게 들썩인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흐느끼던 그녀의 어깨도 이렇게 얌전히 오르락내리락 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심경을 문장에 비춰보고 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고 있다. 두 다리는 익숙한 길을 자동적으로 걷고 있지만 다른 길을 쫒는 마음 때문에 자꾸 넘어지고, 무릎을 털고 겨우 일어서면 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고 고백하는 그녀의 마음은 무슨 모양인지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져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문장은 결국 유서가 되고 말았다. 코까지 훌쩍이면서 눈물로 쓰고 있는 그녀의 유서는 더이상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 뿐. "나" 만으로 여태껏 살아왔는데 죽음 앞에서 "나"는 없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어 그녀는 '내가 이렇게 진짜 죽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립고 사랑할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흐느끼는 울음소리 사이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컴퓨터를 끄고 일어서는 그녀의 뒷모습이씩씩하다. 그녀의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꺼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유서를 쓰고 마음 속으로 죽었다 살아나면 되겠지. 앞으로 그녀가 습관적으로 유서를 쓰게 될 것이라는 웃지 못할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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