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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Dec 28. 2021

6. 무엇을 안 다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아이의 수행평가 글은 이랬다.

지난주 토요일에 대전에 계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엄마가 우리가 준비한 꽃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나와서 차로 가는데 엄마가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땅속에 묻어달라고 해야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왜요?"라고 했다. 지금은 꽃을 놓고 올 수 없다. 엄마는 "그러면 거기에 꽃을 놓을 수 있어" 

돌아오는데 나는 너무 슬펐다.


아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서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아기였을 때 본 할아버지는 쓰러지신 후 요양병원에서 잠깐 씩 본 것이 다 였다. 그것도 중환자실에 계셨기에 아이가 오래 머물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짧게 5분 정도 보고 나면 아이는 남편 손을 잡고 퇴장해야 했다.


아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깡 마른 얼굴로 호스를 끼고 멍한 눈으로 말없이 쳐다보는 모습뿐이다. 뇌출혈 이후 아버지는 그렇게 몇 년을 계셨다.


면회를 하고 돌아올 때는 그 마음이 참 뭐라 표현할 수 없어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말없이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한편으론, 나 또한 자식 둔 부모로서

나중에 내 아이가 이런 기분을 낀다면 얼마나 마음 아플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가끔 보는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버지는 말수가 참 없으신 분이었다. 우리 집은 시끌벅적한 집이라기 단 조용한 편에 가까웠다. 그래서 요절복통이란 단어는 우리와 참으로 거리가 멀기도 했고, 그만큼 아버지와의 거리도 있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재기 발랄 엉뚱 황당스러운 모습들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게 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가 계셨다면 허물없이 다가와 엉뚱함을 만드는 아이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그런데 아이도 말 섞어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가끔은 생각나는 듯, 이런 에피소드로 슬프다는 표현을 한다. 수행평가 글을 읽어보며 내 마음이 뭉클했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짐짓 지나가는 말로 무심하게 물어보곤 추모원을 뛰어나간 게 다였는데, 그것이 그 9년생의 머릿속에 하나의 서사로 그려지고 보여는 것을 보며, 난 아이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의 슬픔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는 다 알고 있다'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다. 난 모르고 또 모른다. 아마도 끝까지 다 알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정말 커다란 자신의 성을 쌓아가는 아이를 보며, 온전한 그를 보며, 온전그 마음이 자기 것으로 꽉 차 있는 그로부터 내 마음의 위로를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모르고 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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