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준혁 Aug 01. 2021

켜지 못한 불빛

내일이 올까요

눈이 쌓이 좁은 골목길 이었어요. 집을 나와 한참을 걷다가 찾은 골목길인데, 아주 좁아 어른들은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거기에 그 아이가 있었어요. 아주 추운 날 이었는데도 얇은 잠옷에 걸친 망토가 전부였죠. 작은 불빛을 안고 있었어요. "얘! 너도 이리 와 봐!" 따뜻했어요. 아주 작은 불빛이었고 금방 사라졌지만, 따뜻했어요. "멋있지? 어떨 땐 거위도 되고 어떨 땐 크리스마스 트리도 돼! 얘. 나한테 이거 살래?" 주머니에 동전 몇개가 있었어요. 동전을 주고 작은 불빛을 받았어요. 집에 갔더니 엄마가 울고 있었어요. 엄마에게 작은 불빛을 보여줬어요. 엄마가 웃었어요.


다음 날 에도, 또 다음 날 에도 그 골목길에 갔어요. 주머니에 동전 몇개를 챙기고서요. 어느 날은 아이가 울고 있었어요. 옷이 찢어져 있었는데, 사이로 보이는 살이 파랗게 물들어 있었어요. 내 옷을 벗어 주었어요. 그리고 나도 있다고, 파랗게 물든 내 살을 보여줬어요. 아이가 웃었어요. 파란 살이 조금 좋아졌어요. 또 어느 날은 같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봤어요. 트리 밑에는 선물 상자가 많았어요. "얘, 나는 저 노란색 상자를 뜯어볼거야. 넌 초록색 상자를 뜯어봐 알겠지? 저기 커다란 파란색 상자는 우리 같이 뜯어보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하지 않니?"

아이는 자주 작은 불빛을 보며 기도를 했어요. "얼른 할머니가 돌아오게 해주세요" 가끔 할머니 얘기를 했는데 조금 아파서 옆 마을 의사선생님에게 가있다고 했어요. 할머니랑 살던 작은 오두막에서 호박수프를 만들어 먹을 때가 제일 신난다고 했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오면 같이 오두막에서 호박수프를 만들자고도 했어요. 할머니 얘기를 할 때 아이는 항상 웃었어요. 그래서 저도 기도했어요. '얼른 할머니가 돌아오게 해주세요.'


달이 큰 날 이었어요. "얘! 얼른 와 봐! 얼른!" 달이 커서 밝아진 골목길에서 아이가 밝은 얼굴로 손짓했어요. "내일 할머니가 온대! 할머니가 오면 너도 같이 오두막에 가자고 말할거야! 우리 오두막에서 트리도 만들고, 호박수프도 만들어 먹자!" 말하는 아이 얼굴이 달처럼 밝았어요.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제 더 이상 동전은 주지 않아도 된다며, 아이가 작은 불빛들을 이만큼이나 줬어요. 내가 작은 불빛을 좋아한다는 걸 알거든요. 우리 엄마가 좋아한다는 것두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집으로 뛰어갔어요. 엄마가 자고 있었어요.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아요. 좋은 꿈을 꾸고 있나 봐요. 엄마 옆에 앉아서 작은 불빛을 켰어요. 이만큼 많으니까, 엄마가 이만큼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 놈! 그깟 성냥 치우지 못해?" 아빠가 쿵쿵 소리 내며 다가왔어요. 얼른 몸을 움크렸어요. 아빠의 발이 너무 컸어요.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헹! 애 엄마가 저러니 애가 병신이지..."


집을 나와 한참을 걸었어요. 아주 좁아 아빠는 들어오지 못할 작은 골목길로 갔어요. 아이는 없었어요. 내일 할머니 만날 준비를 하러 갔나봐요. 작은 불빛을 켰어요. 이번엔 작은 오두막이 보여요. 할머니랑 엄마가 호박수프를 만들고 있어요. 아이는 트리 아래에서 노란색 상자를 뜯고 있어요. 거위가 들어있을까요. 작은 불빛이 꺼졌어요. 초록색 상자에는, 커다란 파란색 상자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얼른 다음 불빛을 켜보고 싶은데, 가슴이 많이 아파요. 다음 불빛은 내일 켜봐야겠어요. 아직 남은 불빛이 이만큼이나 많으니까요.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얼른 내일이..

작가의 이전글 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