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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Sep 15. 2021

생애 처음 선택한 고등학교는 천운이었다

소설 연재 1편


스물하나, 원하던 회사에 입사를 했다. 실업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들이 그랬다. '여자는 남자 잘 만나서 시집만 잘 가면 팔자 피는 거야' '이 학교 터가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고 선배들이고 결혼도 잘하고 다들 잘 살잖아! 너희들도 선배와 선생님 기운을 받아 멋진 인생을 살아가도록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 졸업한 후 너희들 세상을 그려봐' 여자 선생님들은 여자 학생들만 있는 여고에서 늘 하는 말들이다.


나조차 이 학교만 졸업하면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학교생활을 했다. 학교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나는 일찍 감치 대학교를 포기했고 학교 졸업과 취업을 목표로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선생님 말이 현실이고 나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은 남 희빈이다. 장희빈도 아니고 남희빈, 이름으로 놀림도 당하고 짓궂은 장난감의 노리개가 되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악의로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웃고 우는 친구들이 있어 덩달아 행복했으니까.


여고 생활을 하면서 '희빈'을 찾는 친구들이 늘었고 무슨 모임이든 희빈을 끼워주었다. 어디를 가든 인기 만점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인기 있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향을 가진 일명,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생각을, 느낌을 소신껏 발언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인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희빈을 사랑하고 찾아주는 것만 봐도 내향적인 성격에 외향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걸 먼 훗날 알게 되었다.


실업 고등학교는 그야말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공부를 연습하고 익히는 학교생활이었다. 컴퓨터실에서 키보드를 칠 때마다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친구 정원이가 그랬다.



"희빈아, 긴 손가락으로 키보드만 만지지 말고 피아노를 치면 정말 잘 어울리겠어. 엄마한테 피아노 배워달라고 해! 키보드 치기 아까운 손가락이야. 얇고 긴 손가락, 손톱 모양까지 어쩜 이렇게 이뿌니! 키보드나 타자 치지 말고 우아하게 피아노나 악기를 다루는 직업을 선택해! 알겠지!"



친구인 정원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집 사정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정성 어린 친구 응원에 무거운 마음 한편이 안온함이 느껴졌다.


'피아노는.. 겨우 학교를 다니는걸.. 정원아 너는 우리 집 사정을 몰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장녀 노릇을 하는지. 하지만 조건과 여건에 상관없이 나를 알아주는 네가 있어 힘난다. 그래서 지겨운 학교도 다니는 거 같아!'


속으로 친구에게 하지 못한 말을 쉼 없이 되뇌다 내 처지를 상기시키며 정신을 차리고 학교, 집을 반복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친구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진로를 위해 학원이다 과외다 하며 수업이 마친 후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에 나는 외로웠다. 지옥보다 더 싫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집과 학교 거리는 버스로 한 시간 가량. 한 버스로 집과 학교를 다니는 건 행운이었지만 왕복 두 시간이라는 거리는 늘 지치고 힘겨웠다. 고작 열일곱 살 아이가 다녀야 하는 거리는 악몽과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학업 성적은 바닥을 쳤다.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성적은 바닥을 쳤고 이러다 제대로 된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불안이 스며들었다.


성적을 본 엄마는 어떻게든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며 용하다는 점술가를 찾아 고등학교 갈 수 있도록 방침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방법을 고등학교 시험 보는 날 나에게 먹인 것이다.


부모 심정은 한결같다. 최소한 교육을 시킨 후 스스로 인생을 찾아가라는 마음을 안고 절실한 마음으로 점술가를 찾았을 것이다. 딸자식 미래가 염려스럽고 걱정되었으리라.


딸 미래를 위해서 최소한 초등학교 전학을 적게 해야 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을뿐더러 평탄치 않은 가정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엄마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사를 해야 했고 지역을 떠돌다 보니 결국 본의 아니게 전학을 수십 번을 하면서 기초를 배우지 못했다. 기초가 부족하니 중학교 학업도 처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진학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만 생각하며 열중해야 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희빈은 엄마 불안을 그대로 자신의 불안으로 끌어안고 살기 시작했다.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불안만 없다면 이 세상을 다 얻는 기분일 거라고, 그러니 불안한 마음만 선물로 주지 말고 행복한 마음도 선물로 달라고 기도를 했다.


불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학교생활은 버거웠다. 나보다 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한심했고 초라했다.


비교하는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교하다 현실을 마주하면 좌절로 돌아왔다. 좌절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이 보였다. 나를 원하는 고등학교가 있다는 걸. 친척 집과 거리가 먼 학교, 나의 초라한 성적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야간학교가 아닌 주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희망의 빛이 중3 교실에 임 고등학교를 다니는 선배들이 찾아왔다.


성적이 우수해 상위 1% 실업계 고등학교는 누구나 말하면 '아! 멋진 학교, 훌륭한 학교 다니는구나. 공부 잘하나 보네'라는 칭찬을 받을 수 없는 학교이지만 자신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학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자신을 믿고 학교를 믿고 선배를 믿으라는 고등학교 설명을 들으며 '이 학교다. 나를 살리고 엄마 걱정을 덜 수 있는 학교다' 확신이 들었다.


확신이 든 학교는 집과 먼 거리의 학교.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는 동네. 문현동이었다.


중학교는 영도에서 다녔다. 그때만 해도 영도에서 새로운 가족과 삶의 터전을 마련해 살았다. 그러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영도를 벗어나 처음 보는 동네로 이사를 했고 그 이사는 먼 거리 고등학교를 선택한 큰 딸을 위한 거라는 걸 먼 훗날 알게 되었다.


문현동과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영도보다 낫은 근거리의 동네로 이사를 했다. 영도에서는 내가 선택한 학교로 등하교만 버스 두 번을 번갈아 타야 하는 거리, 즉 등교 두 번 하교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거리 설정이 이루어졌다. 한 시간 하고도 더 걸리는 거리었다. 부모는 상의 끝에 영도보다 나은 거리, 지금 희빈과 아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를 선택했고 엄마는 30년 동안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희빈은 이 동네가 싫어 떠났다 20년 만에 싫은 동네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싫다고 벗어났지만 다시 싫은 곳을 찾는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나고 힘든지도 모르겠다.


희빈이가 선택한 고등학교 경쟁률이 생각보다 높았다. 20:1. 20명 중 한 명이 선택한 학교가 되고 말았다. 이 학교 장점은 야간 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르다는 점이다.


야간 학교라면 저녁에 수업이 시작되면 밤에 끝난다. 그런 학교는 싫었다. 당당하게 해가 있을 때 등교를 하고 어두워질 때 하교하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했다.


성적이 부족하니 주간 학교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절망했다. 야간 학교를 갈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러다 야간 학교라고 해도 주간과 별반 차이 나지 않은 그 학교는 천운으로 행복을 만끽했다. 운이 좋다고 속으로 외쳤다.


시험을 치르는 당일 엄마는 의문의 음료를 나에게 내밀었다. 요구르트 위에 검은 이물질이 둥둥 떠다녔다.



"엄마 이게 뭐야! 요구르트 태웠어?"


"아니야. 그냥 마셔. 아무 생각 말고. 다 너에게 좋은 거다. 이번 학교 붙어야지"


엄마 말 한마디에 맛있게 먹고는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초록불이 빛났다. 그때부터 나의 직감은 좋았다. 확신이라고 강하게 믿고 자신을 믿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학교라도 자랑스럽게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빈의 장점이자 단점.


열악한 가정환경, 남들과 다른 가족 구성원이라서 자신의 꿈보다 현실에 타협하는 결단력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여자가 살아가는데 득과 실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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