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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04. 2022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고 일반 군으로 분류되었다

엄마 에세이

음성이기를 바라며 걱정하는 엄마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SNS에 목이 아프고 아이가 고열로 힘들어한다고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오미크론일 수 있으니 PCR 검사든 신속항원검사를 하던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요일 기침하는 제부를 만났고 화요일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한 나는 몸살이라고 생각했다. 제부 역시 검사를 했고 음성으로 나왔다고 했으니까. 안심했다. 따끔거리는 목을 가라앉히려고 생강청을 마셨지만 역효과였다. 오히려 더 아팠다. 수요일 아이의 피아노와 발레 학원만 다녀온 뒤 손을 씻고 저녁을 먹었다. 월요일부터 여동생이 저녁에 놀러 왔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제부 목도 나처럼 따끔거리고 아팠던 거야?" "응, 언니야 그래서 오빠는 음성 나와서 병원 가서 약 받아왔잖아. 언니도 검사하고 병원 가서 약 받아와야 해. 엄청 아프다고 하던데" 수요일 저녁 동생과 대화 나누였다. 일요일 동생네와 절에 다녀왔고 우리 집에 모여 족발을 시켜 먹었다. 그러나 제부는 집으로 향했다. 조카 음식을 준비해주기 위해서였다. 여자 세명과 여니는 족발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후에 모두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 주 월요일은 여니 피아노 학원만 다녀온 후 그 어디에도 다니지 않았다. 화요일 역시 피아노 학원을 다녀왔고 집에만 있었다. 수요일은 발레와 피아노 학원을 다녀온 것이 다였다. 어디서 옮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식당을 간 적도 카페를 간 적도 없었다. 아이 발레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잠시 제과점에 들려 빵을 샀고 30분 남짓 제과점 안에서 빵 한 조각을 먹었을 뿐이었다. 제과점 안에 있는 사람은 직원 한 명과 어르신 한 분이었고 백신 접종한 사람들이었기에 안심했다. 빵을 먹으면서 마스크는 중간에 썼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했던 나인데도 불구하고 몸 상태는 오미크론 증상과 같았다. 동생도 엄마도 나도 희한한 일이라고 했다. 집에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이 없었기에 너무 황당했다. 그중 제부가 목감기로 기침하는 거 말고는 없었다.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하고 나 혼자 조심한다고 해서 코로나는 비켜가지 않았다. 백신 접종 2차까지 마쳤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말하면 다들 이렇게 말했다. "백신 접종해서 열이 나지 않은 거야'라고 말이다. 아이는 접종을 하지 않아 고열로 고생을 했고 나는 접종을 했기에 열은 나지 않았지만 그 외 증상은 다 나타났다. 폐렴만 빼고 말이다. 


보건소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나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는 백신 2차까지 맞았는데 왜 걸리는 겁니까?" "3차를 맞아도 코로나에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도 몰라요. 복불복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이가 없었다. 사실 백신을 접종하고 안심한 것도 있었다. 안심했지만 아이가 접종하지 않아서 될 수 있는 대로 집밥을 먹었고 배달 음식을 이용하면서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버텼는데 확진자 증가일 때 걸리다니 나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 체온을 체크하고 해열제를 먹이고 모녀는 잠을 잤다. 자야만 덜 아팠으니까. 눈을 뜨니 아이는 열이 오르고 있었고 해열제를 먹이기 전 뭐라도 먹여야 할 거 같아 아이가 원하는 음식을 했다. 그나마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는 게 당겼는지 그걸 먹겠다고 한 여니였다. 나 역시 주방에 오래 서있을 수 없었다. 간단한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해열제를 먹이고 냉각시트를 교체하고 누워서 지냈다. 내일이면 병원 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내 목은 점점 부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면 목이 따가웠고 아팠다.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부었다.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지만 증상은 급격하게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하루는 목만 아프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목이 부었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며 온 몸이 쑤셨고 미각과 후각이 점점 손실되고 있었다. 추웠다가 더웠다는 반복하는 오한이 왔다. 밤이 되면 무슨 병이든 심각해진다. 오미크론 역시 밤이 되니 심각해졌고 아이는 오한과 코막힘이 심각해졌다. 가습기를 풀가동을 했고 거실에 있을 때는 거실로 가습기를 옮겨 습도를 맞추어야 했고 큰방에서 자면 큰방으로 가습기를 이동해야 했다. 보건소 직원이 말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어머님이 신경을 써주시고 가습기로 습도를 맞추어 호흡 곤란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가습기가 없었다면 모녀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을 것이다. 목과 코가 막히면서 메말라버렸다.


검사 다음 날 12시 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아프다 보니 깊은 잠을 잘 수 없어서 폰만 들여다보았다. 혹여 음성이라는 문자를 보기 위해서. 아이 역시 몸이 편치 않아서 일찍 일어났고 이른 아침을 먹고 진통제와 해열제로 반나절을 버텼다. 정오 12시가 되기 직전에 문자가 왔다. 아이에 대한 결과 통보였다. 가슴이 두 근 반 세근반 뛰었다. 제발 양성만 피해 가라고 그러나 문자는 내 바람과 반대의 문자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착각한 거 아닐까 하고 문자를 확대해서 천천히 읽었다. 여니 PCR 검사는 양성이므로 외출을 금하고 며칠까지 자가격리와 재택치료인 일반 군으로 분리가 되었다는 문자와 역학조사를 해달라는 URL이 도착했다. 지금 역학조사가 급한 게 아니라 앞으로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나에게는 급했다. 아픈 아이 치료가 급했다. 문자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PCR 검사 결과가 문자로 도착했다. 불 보듯 자명한 일 나 역시 양성이었고 외출을 금하며 일반 군으로 분리되어 재택치료를 해야 한다는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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