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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09. 2022

글쓰기를 참 잘했다고 느낄 때 비로소 나는 웃는다

엄마 에세이

2019년 12월 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나에게 용기가 없는 줄 알았다.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가 20대 이후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 내가 겁 없이 덤볐던 건 바로 티브이 출연이었다. 겁보라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힘들어했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 했다. 새빨간 얼굴로 더듬거리는 말소리가 그 어떤 것보다 듣기 싫었고 보기 싫었다. 내가 싫어하니깐 감추고 말았다. 어느 날, 친정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와! 김수미가 밥을 해서 사연자들에게 밥 한 그릇 대접하는 프로가 생겼어"

"그게 뭐야?"

"티브이에 나오는데"


엄마 말을 듣고 프로를 확인했다. 그건 바로 사연을 보내면 되는 거였다. 프로 특성상 주제와 사연이 비슷하면 채택이 되었고 채택되면 김수미와 대화를 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프로였다. (즉, 김수미가 사연을 듣고 사연자에게 위로해주는 프로) 과연 내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그것도 연예인과 대화를 하며 밥을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단 일단 덤벼보자라는 마음이 더 컸다.


가장 숨기고 싶었던 상처를 조심스레 꺼내어 사연을 보냈고 운 좋게 채택이 되면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글이라는 걸 쓰지 않고 책을 읽지 않았다면 무의식에 숨겨진 용기를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메모를 하라고 한다. 다이어리에 하루 중에 느꼈던 소중한 감정 한 줄이라도 좋으니 적어보라고 했다.


삶이 힘들어서 그런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작심삼일이 비일비재한 나를 안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사면 1년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6개월만 채우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어느 순간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아오던 중 이유 없이 가슴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토해내고 싶었다. 어디다 토해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 당장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 그 상황에선 뭔가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아플 거 같았다. 터닝 포인트를 모르는 척하지 않고 일단 개설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엄마 말 한마디에 사연을 보내면서 티브이라는 매개체와 가까워졌다. 


글을 쓴다는 건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많은 감정을 실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처음에는 몰랐다. 그저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글로 풀어내고 쓰니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을 했고 시련을 겪었기에 아픔을 글로 풀어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니 용기가 생기면서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가 바로 글쓰기였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하루를 제대로 마감하지 않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지금은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원하는 글을 아직 쓰지 못했다. 아니 그게 뭔지 모르겠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사춘기 때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 소설을 쓰고 싶기도 하다. 발라드 노래처럼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내 마음과 느낌을 소중히 다루어 글로 풀어내고 싶다.


이제는 마흔이라는 관문에서 쉰이라는 문턱에 가기 전에 아름다운 여자의 인생을 담아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럴까? 글을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지만 때론 맛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글을 쓰다 막힐 때이거나 글을 썼지만 조잡하다고 느낄 때가 바로 글이 맛이 없다. 허무하게 느껴지고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글 하나로 우울감이 접어들 때도 있고 날개를 달고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글로 녹이고 싶기도 하고 세상을 떠돌며 보고 배운 그 감정을 소설로 담고 싶지만 아직은 내 상황이 여유롭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가 된다.


어린 딸을 보살펴야 하는 보호자이기에 선 듯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갑갑하다고 그러니 날개를 달고 세상을 떠돌고 싶다고 목청껏 말해보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마음속 깊은 곳에 숨기고 책에서 그 세상을 그림을 그리고 내가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며 좋은 것만 보며 상상하게 되었다.


요즘 자주 읽는 책이 소설책이고 최근에 읽었던 책은 '밝은 밤'이라는 인기 높은 책을 읽었다. 여자의 이야기 쓴 소설이었고 증조할머니부터 외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자신이 처한 인생을 그린 삶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지금 내가 쓰는 글도 여자의 삶에 대한 여자의 인생을 조금씩 글로 녹이고 있다고 느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딸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그 속에서 희망을 품고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왜 글을 쓰고 또 쓰는지. 그건 여자에 대해 쓰고 싶다는 걸. 그 글이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갖기를 바라고 어떤 이에게는 희망을 갖기를 바라며 실력이 부족한 글이지만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촬영 섭외가 오고 많은 작가님들과 친분을 쌓는 것도 글을 쓰기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만 힘들게 살아가지 않다는 걸 그래서 현재 내가 잘 이기고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고 위로받고 싶다. 


누군가가 타인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면 상대가 나를 모르고 있더라도 나는 조심스레 글을 쓴다. 그 위로는 타인에게 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나에게 하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위로해줄 수 있는 글이 참 좋다. 비록 아픈 몸이지만 글을 쓰면서 생기가 돋는다. 차가운 땅에서 새싹을 틔우는 봄나물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이 땅에 새싹을 틔우리라 나는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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