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Dec 26. 2022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 난 엄마 직업을 부끄러워했다

엄마 에세이

남자 친구를 소개했던 어느 날. 꽃다운 나이 스무 살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면에 감춘 말이 엄마 앞에서 튀어나왔다.


"엄마 하는 일 친구에게 말하지 마" 그 말은 들은 엄마는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하는 일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해. 그래서 남 앞에서 당당하거든"


엄마의 말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내 내면에서는 엄마가 하는 일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엄마 사주에는 '물장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병이 나는 엄마는 이혼 후 식당부터 주점까지 가리지 않고 했다.


엄마 나이 40대 후반,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성공적으로 홀로서기를 했다. 엄마에게 맞는 일. 바로 술장사였다. 술장사라고 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몸을 파는 직업'이라고 단정 짓었다. 그래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자신만의 기준과 철학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하는 일이 물장사이지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여성이었다. 자신의 나이답지 않게 꾸미는 걸 좋아하고 피부에 관심이 많은 엄마. 그러나 술을 판매하는 일은 자신의 건강을 망치는 일이다. 


"가게 그만하면 안 돼"

"너희들이 엄마 먹일 거야. 그런 능력이 안되면 그런 말 하지 마"

"건강이 걱정되는 거지. 지금 엄마 나이가 그 일을 할 나이가 아니잖아. 이제는 아플 일만 있다고 엄마가 말해놓고 그 일을 놓지 못하고 있어?"

"혹시 너 엄마가 이 일한다고 부끄러워서 그만하라고 하는 거야"

"아니야. 오해하지 마. 엄마 몸 엄마가 더 잘 알잖아. 기억력도 좋지 않고 위나 간이 아파서 지금 병원 다니잖아. 그 일 말고 다른 일 찾으면 몸은 덜 아플 거 아니야"

 

엄마 하는 일이 어릴 때는 부끄러웠다. 남자들 상대로 하는 업종이 미치도록 싫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알고서 더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꾸 아픈 엄마를 보며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더 커지고 있다.


엄마 형제가 엄마 건강을 걱정한다고 한다. 나에게는 외삼촌인데 엄마 나이가 많아서 그 일을 그만하라고 한다. 분식가게 할만한 좋은 점포가 났는데 해보지 않겠냐는 작은 숙모의 제안에 엄마는 생각이 많아지는 듯했다.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던 장사가 엄마에게 힘든 모양이었다. 숙모 제안에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야. 경제가 살아나야 장사가 되는 거지. 이참에 좀 쉬다 하는 건 어때"

"안 그래도 쉬다 김밥 장사를 해볼까, 쫄면을 해볼까 생각 중이야" 

"허리도 안 좋은 사람이 무슨 음식 장사야. 그러다 허리가 더 아프면 어쩌려고. 지금은 때가 좋지 않으니 천천히 알아보자"


엄마는 간 검사를 해놓은 상태다. 간 수치가 높아져서 병원에서 CT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나 검사 결과가 나쁠까 봐 걱정된다"

"엄마 생각엔 이번 결과가 나쁠 거 같아?"

"응, 자꾸 피곤함이 오거든.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곧 나이가 칠순을 바라보는데 당연한 결과야. 만약 결과가 나쁘면 쉬어야지. 안 그래"

"그래 그래야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안하게 살 팔자가 못 되나 봐. 나도 내 친구처럼 남편이 벌어 온 돈으로 살고 싶다" 오래전에 엄마가 넋두리로 한 말이 기억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단지, 건강이 염려되어 쉬다 가라고 말하는 것이 미안하다. 자식 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하고 걱정만 끼치는 거 같아서 말이다.


"내가 카페를 창업하면 엄마가 할래"

"야. 나 발음이 안돼"

"무슨 발음?"

"커피 이름들 말이야. 혀가 꼬여서 안 돼. 그래서 거기서 일은 못할 거 같아"


영어 발음이 안 되는 엄마는 걱정부터 앞선다.

'아메리카노'

'바닐라 라테'

'캐러멜 마키야토'등 생소한 글을 보면 머리부터 아프다는 엄마 말에 웃음이 났다.


"연습하면 되는 건데 겁부터 내. 집에서 연습해. 혀가 굳어서 그래. 나도 안돼. 근데 책을 보고 큰소리로 글을 읽거든." 엄마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편안한 일자리를 권해도 자신이 싫으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CT 결과는 나왔고 다행히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결과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간은 한번 나빠지면 회복은 거의 하지 못한다. 더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기몸살의 최고 처방? 휴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