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gihnK Aug 31. 2023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2. 내가 살았던 바로 그 관사-1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22세 때의 이야기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사 결과를 받고 나서 이내 며칠 후 발령장 교부식을 거쳐 강원도의 어떤 시골 학교(그래도 그 군지역에서는 가장 큰 학교) 18 학급 규모에 발령을 받았다.


38선 이북 지역이라 2월임에도 매우 추웠는데 관사가 여유가 있으니 사용해도 좋다고 하여 방세를 아낄 수 있으니 설레고 좋았다. 그러나 부모님과 함께 발령 전 관사를 둘러보았는데 그 장면은 설렘과는 반대로 매우 충격적이어서 잊을 수 없다.


분명히 지난주 까지도 아기 키우는 엄마가 살았다고 들었는데 들어가 보니 벽에 벽지가 없다. 맨 시멘트 벽에 흰 페인트만이  겹 칠해져 있는데 벽이 차가우니 신문지와 포스터 같은 것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소주 광고 포스터가 하나 붙어있었는데 여자 모델의 얼굴에는 낙서가 되어있어 왠지 모르게 기괴했다.


두 개의 작은 침실이 양쪽에 있고, 가운데에는 거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옛날 가옥의 나무로 된 '마루'가 놓여있다. 당연히 이 공간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발이 시리다. 싱크대가 있는 곳에는 환기 후드도 없었고, 보일러실은 침실 바로 옆이었는데 구멍 뚫린 벽으로 바깥이 훤히 보인다. 보일러가 왜 여기 있지? 배기가스가 잘못 새면 중독되는 건가 싶고, 외벽이 뚫려있으니 아무리 보일러실을 닫아둔다 하더라도 집안으로 외풍이 한가득 들어온다. 보일러실 바닥에는 팔뚝만 한 큰 쥐가 한 마리 죽어있다. 걱정이 많은 우리 아버지는 당장에 방문 틀에 문풍지라도 붙여서 유독가스가 못 들어오게 막으라고 하시며 난리였다.


화장실은 어디 있지? 뒷문인가 싶은 유리가 끼워진 철문 하나가 보인다. 열어보니 내부에 잠금장치가 없고, 외부에 있다. 이상하네. 볼일 보거나 씻을 때 잠그지도 못하는 건가? 알보니 원래는 공동 변소를 쓰다 90년 쯤 샌드위치 패널을 뒷문 쪽 외벽에 붙여서 화장실을 만들어 이어 붙였다는 것. 놀랍게도 샌드위치 패널 모서리 틈새가 벌어져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데 다행히 인적 없는 뒷산이었지만 누가 화장실을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벌어진 틈새에는 스카치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왠지 으스스한 이 화장실은 물을 사용하고 나면 바닥에 얼음이 얼었다.


침실의 전등은 어릴 때나 보던 동그란 똑딱이 스위치가 줄로 달린 형광등이었는데 내가 아기 때 시골집에서 보던 것과 같았다. 콘센트는 110V 전용 11자 모양이었다. 전압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 콘센트를 그대로 사용하다니... 충격적 그 자체였다. 이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흘러간 장소 같았다.


멋진 사실은 이곳에 쭈욱 선생님들이 살았는데 아무도 건의하지 않고 그곳에 순응하며 살았다는 것. 바로 옆 관사는 심지어 5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 내 방에 전에 사시던 분은 심지어 신생아와 살던 여자 보건선생님이었다. 아기가 살았다던 그 방 천장은 주먹만 한 쥐구멍이 있고 쥐가 다니는 소리까지 들렸다. 


'선생님들 지나치게 착해서 그런 걸까요?'


교장선생님과 행정실장님께 관사 상태를 알렸더니 깜짝 놀라신다. 알고 보니 신관사 건물이 따로 있었는데 그곳은 최신식이었고, 교장관사도 전부 리모델링되어 상태가 좋았던 것. 상태를 보고 매우 놀라신 어르신들 덕에 그나마 곧바로 조명은 최신형 형광등으로 교체되었고, 콘센트도 220V전용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내 리모델링 계획이 잡혔다. 이것은 그 관사 건물의 20년 만의 리모델링으로 측된다.


아무리 리모델링 예정일지라도 당장 다음 주부터 이곳에 살아야 하는데... 나는 쥐가 무서워 일단은 도배장판을 새로 하면서 천장 구멍을 막았다. 다 썩은 싱크대는 음식을 해 먹기에는 너무 비위생적이라 버리고 사비로 새 싱크대를 구입했다. 보일러는 이전 거주자가 겨울 내내 틀지 않아 얼어서 고장이 난 상태였고, 고장 수리 역시 사비로 충당해야 했다. 관사에는 청소하고 몸만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이사 전 들어간 비용만 150만 원이 넘게 들었다.


방문을 잠그는 장치가 따로 없어 내부에서는 못으로 문을 잠그었고, 출입문은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들고 다녀야 했다. 창문에 방범창이 없어 잠시 환기할 때 제외하고는 두려움에 꽉 걸어 잠가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기간 동안에도 옆 관사에는 외부인이 침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침입을 시도던 사람은 젊은 군인이었으나 그 사건은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되어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