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가자 키 큰 금발 아가씨가 있었다.
호주에서 왔다는 린다는 이미 두 달째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둘째 날 저녁쯤이었나? 들어오는 물을 퍼내다가 결국 사람들을 다 집에 보내고 후문을 막았어요. 혹시 아이들이 들어 오면 안 되니까요. 다행히 비도 그치고 이제 물도 조금씩은 나와요”린다는 눈을 싱긋하며 팔을 벌려 나를 포옹했다.
린다의 따뜻한 품이 느껴지자 휑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올랐다.
비가 많은 걸 변하게 했다. 쿰쿰한 매트리스 위에 짐을 풀며 방을 돌아보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창문 밖으로 노을이 내려앉았다. 밖으로 나와 일정을 보며 본관 계단에 앉아있는데 “덥죠?”하며 후이가 오렌지 맛 아이스크림을 들고 왔다. 후이는 일정이 앞당겨져 내일 바로 북부로 가야 하니 오늘 밤에 짐을 좀 챙겨놓으라고 했다. 아삭아삭 얇게 갈라지는 아이스크림을 깨물며 우리는 천천히 건물을 둘러봤다.
고엽제 환자들과 가족들이 머물렀다는 센터는 여기저기 공사 중 팻말이 놓여있었다. 본관 뒤쪽을 지나 낡은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관계자용 사무실이 보였다. 그 왼쪽으로 돌아가면 벽돌 바닥으로 된 아담한 정원이 나왔다. 걷기 어려울 만큼 풀은 무성히 자라있고, 굳어진 흙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해 질 녘에도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곤 했는데 아마 당분간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