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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Dec 06. 2024

몽상가의 책 읽기

저도 미스터 선샤인의 '희성'처럼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몽상가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쓸데없는 생각들 덕분이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 봐도 몇 시간이 훌쩍이다. 흰 구름으로 집 한 채를 지었다가 토끼도 쫒았다가, 저 하늘 너머에 뭐가 있을지 생각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하루가 꽤 흥미진진하다. 바람에 구름이 움직이기만 해도 영감을 받으니 말 다했다. 뭐 이 정도면 천재적인 예술작품이라도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또 안 그러면 어떠하리. 한 번뿐인 이번 생. 내게 주어진 시간이 꽤 즐거이 느껴진다면 그것 또한 축복인 것을.


이렇게 꼬리를 물로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는 책을 읽으며 문장과 문장 사이를 유영하게 한다. 그러니 나는 책 읽기가 느리고 한 번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는 여러 책을 동시에 읽으며 연결 짓는 걸 좋아하다.


지난여름 한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았다. 색색의 유리들이 처연하게 빛났다. 작열하는 태양이 색유리를 통과하고는 성당 안에서 숨죽였다. 목이 타는 듯한 그 신성한 공기를 조심스레 마시며 빛과 신과 인간을 생각했다. 며칠 뒤 나는 서점으로 가 단테의 신곡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직 지옥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끝없는 고통에 사로잡혀있는 무리 중에 타락한 천사들도 섞여 있는데, 이들은 천국이 더럽혀질까 내쫓겼고, 죄를 잊으면 안 되기에 깊은 지옥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신의 가르침을 배반한 자들. 신을 따르지 않은 죄인들. 내가 신곡을 여기까지 읽고 펼쳐보지도 않은 김훈의 흑산을 떠 올린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흑산은 조선시대 천주교를 믿다 박해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손끝에서 스쳐 지나갔던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곡 읽는 걸 잠시 멈추고 흑산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신을 믿지 않아 고통을 받는 사람들과 신을 믿어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이에서 나는 그 여름의 짙은 갈증을 느낀다. 계속 읽기엔 내 영혼의 쉼이 필요하기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아트북을 들춰봤다. 웨스앤더슨 감독의 형형색색의 빈티지한 조합들은 다시금 스테인드 글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다시 신곡의 다음 챕터를 넘길 수 있다.


몽상가의 책 읽기는 안료를 통과한 햇빛이라는 아주 무용한 것에 반응해 결국 끝을 볼 수 없다는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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