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읽는 밤
동주의 시가 필요한 그대에게
동주의 시를 좋아하나요?
동주를 그렇게나 좋아한다. 살면서 갈피를 못 잡겠다 싶을 때 그의 시집을 펼쳐 본 지 꽤 됐다. 며칠 전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놓았다. 글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유독 그날 힘들었나 싶기도 하고, 연말이라 내가 잘 살았나 하는 확인을 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수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는 까무룩 잠이 들어 막상 책을 펼쳐보지 못한 채 하루 이틀이 지났다. 그러고 나서도 진득하게 뭘 읽을 시간은 없었는데 허리 숙여 머리카락을 치우며, 혹은 빨래를 개며 꺼내놓은 책 겉표지만 슬쩍슬쩍 보고는 언제 읽나 노래를 부르며 또 하루가 지났더랬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처럼 힘든일이 있을까. 마음은 영혼이기에 이를 깨우고 움직이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건너뛴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게 분명하다.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린다 해도 풀리지 않을 분노가 쌓일 것이다. 고개를 돌리면 다른 한편에는 체념한 이들의 한숨이 허공을 떠돌겠지.
국내외 라디오와 뉴스와 개인 SNS에 못다 한 말들이 한없이 재생된다.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어디선가 뉴스가 들려온다. 언젠가 다시 나올 우리의 리더는 동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무장해제를 시킬 수 있는 건 무지한 명령이 아닌 단단하게 연결된 마음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제 모두 무얼 잃어버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다시금 헤맸다. 그래도 시는 남아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그렇게 다시 살아가면 된다.
윤동주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도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Brunch Book
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