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혀를 삐쭉 내밀었다.눈은 친절하게도 혀에까지 내려앉았다. 눈은 이온음료 같은 찝찔한 맛을 남기며 뜨거운 입속에서 사라지고 또 사라졌다. 눈을 보며 떡가루 같다는 사람도 있고, 소금과 같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소금 같은 눈'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하얀 눈을 보며 바다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은 바다에서 나서 눈과는 전혀 상관없다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니 육지에 내린 눈은 친절하게도 바다에도 내려앉는다는 걸 알아버렸다.
바다에 나린 눈은 바닷물에 섞여 소금이 되고 소금은 다시 바다와 맞닿아 눈이 된다.
소금과 눈. 둘의 인연은 모질게도 깊다.
모두들 조심조심 걷거나 카페 안에서 주의 깊게 바깥을 살펴보는 중인데 어엇. 어디선가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들이 밀려왔다. 돌아보니 근처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오고 있었다. 한바탕 눈싸움을 한 모양인데 다시 시작됐나 보다. 아예 한 명을 눕히고 눈으로 이불을 덮어준다. 이미 양말은 젖어 벗어버렸나? 아니면 근처 스터니까페에서 탈출했나? 몇 명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었다.
변성기 아이들의 높낮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환호성이 길가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분이 물끄러미 이들을 바라봤다. 첫눈이 이렇게 앞이 안 보이도록 쏟아지는데 할아버지는 눈은 보지도 않고 가던 길을 멈추어 그 무리를 본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과 그들을 보는 할아버지를 동시에 바라보며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일지 아주 조금 가늠해 보았다. 아들이 있는 나는 내 아이도 저렇게 목소리가 변할 때가 오겠지 싶었고 할아버지는 저 나이 때의 당신은 어떻게 이 눈을 맞이했을지 조금 먼 과거를 헤집어보고 있었을까.
신호등이 바뀌어 나는 길을 건넜고 꽤 걸어가는 동안에는 눈송이에 아이들의 즐거움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모자에 눈이 더 쌓이도록 그 곁에서 발을 뗄 줄 몰랐다.
함께 눈을 맞았던 아이들은 늙어가고 늙은이는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 나린 눈은 어디론가로 흐르거나 증발해 다시 바다로 갈 것이다. 눈 내리던 날 우연히 같은 장소에 있던 우리는 마침내 바다에서 만날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는 하얀 소금결정을 내놓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