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윤동주
책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는 오래된 윤동주 시집을 발견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쯤이다. 1948년 1월 10일 초판 되었고 빛바래 보이진 않지만 1972년쯤 중판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試>. 책장 맨 아래에서 허리 굽혀 꺼낸 책은 소중히 비닐로 싸여 있었고 그 손길이 무색하지 않게 고운 모습 그대로였다. 대신 누렇게 변한 얇은 종이들이 그대로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하얗고 보드라운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간의 무게가 한 겹 한 겹 쌓인 책이었다.
쿰쿰한 책 냄새를 맡으며 책장을 넘기니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윤동주 사진이 보였다. 한 페이지 전체를 꽉 채운 흑백 사진. 학사모를 쓰고 졸업가운을 입은 윤동주다. 이 사진이 시인의 얼굴을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을까. 이 사람이 윤동주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누런 종잇장이 바스러질까 조심스러웠는데 손에 익으니 책장이 훌훌 넘어갔다. 몇 장 더 뒤로 가니 사인펜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1978. 5月. 춘희.
춘희에게 선물 받은 책이었다. 윤동주를 좋아했던 1978년의 아빠와 춘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얼큰하게 취해 퇴근하신 아빠를 붙잡고 춘희가 누구냐고 물으니 대학 동창이라고 했다. 사과를 돌돌 깎던 엄마도 춘희 씨가 준거냐며 반갑게 거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글씨 위에 아빠의 눈길이 계속 머물렀다.
아빠는 다정하지만 대체로 엄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빼꼼히 내민 옛날 책을 보며 눈꼬리가 내려가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아빠가 동주를 바라보는 눈빛은 참으로 부드러웠다. 한없이 강인한 아빠가 그토록 사랑하는 누군가라니.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시집을 내 것으로 삼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전에 받았던 선물이라 해도 가져도 될지 의문이었다. 아빠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틈을 타서 이 책을 물려받고 싶다고, 가져도 되냐고 물었을 때 아빠는 단박에 좋다고 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손에 책을 받아 들고는 재빨리 방으로 돌아와 책상 스탠드를 켰다. 불빛에 춘희의 글씨를 비춰보며 얼굴도 모르는 아빠 친구의 선물이 그토록 고마웠다.
시간이 차근차근 흘러갈 때마다 낡은 시집을 받고 마냥 좋아했던 여중생의 사춘기도 점점 짙어져 갔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사춘기라는 시간에 들어선 그때. 행간 사이에 차마 욱여넣지도 못할 십 대의 반항과 아빠의 호통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에도 우리를 지켜준 건 동주의 시였다.
왜 화났는지 스스로도 몰라 화풀이도 어려웠다. 괜히 시집을 쓰레기통 앞까지 가져갔다가 버리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날이 계속됐다.
마음까지 바람이 불었던 고3 겨울.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집을 나와 옆 동네 놀이터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별빛도 없는 까만 하늘이 마치 내 인생 같다며 한숨 쉬던 그날.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에 들어갔을 때 아빠는 버스를 타고 울산에 있는 회사로 이미 내려간 뒤였다. 다음 날 아빠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그 수화기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무뚝뚝한 나의 대답에 수화기 너머 더 무뚝뚝한 위로가 들려왔다.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어른이 되어갔다. 아빠가 춘희에게 시집을 선물 받았던 나이만큼 이 되어서는 어려운 한자도 없는 가로로 쓰인 윤동주 시집을 사서 읽었다. 세로에서 가로로 바뀌어도 윤동주의 시는 여전히 귀중했다.
시를 읽으며 젊음의 고단함을 견뎌낸 아빠와 딸. 허허실실 옛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스치는 바람에도 함께 아파한 시간들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