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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변호사 Feb 22. 2019

에이... 뭐 이런 걸 다...

이거, 뭐에다 써요?




이제 막 변호사가 되어 업무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변호사법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에 자격등록을 하고, 자신의 주된 업무지 관할 지방변호사회에 입회신청을 하여 승인을 얻은 뒤 개업신고까지 해야 한다.


나 역시 지금보다는 꽤나 앳되고 미간이 평평하던 시절 거센 번거로움을 물리치고 등록, 입회 및 개업신고를 하였더니, 얼마 후 등록증서와 신분증, 기타 몇 가지 서류와 더불어 한가운데 저울(정의의 여신 디케가 손에 들고 있는 그거) 문양이 새겨진 변호사 뱃지가 배달되었다.


<대충 이렇게 생겼다>




누렇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금붙이는 아닌 게 확실한 이 빤짝이를 보면서, 나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등록비와 수십만원에 달하는 입회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낸 돈 중 일부는 저 빤짝이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게 분명하다.


다음에는 도대체 이걸 누가 달고 다닐까 하는 의문이 소떼처럼 밀려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속이 무척이나 꼬일 대로 꼬인 반골충이라서 뭐든지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곤 했지만, 민의의 상징인 의원님 금뱃지도 그들이 빈축을 살 때마다 무능, 권위, 허세의 대명사가 되어 얼큰하게 욕을 먹는 마당에 변호사가 뭐 할라고 굳이 뱃지까지 제작해 달고 다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 뱃지는 아주 오래전 이 바닥이 호황이던 시절, 그러니까 어디 가서 변호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꼽에 손을 얹는 시늉이라도 하며 “아이고, 선생님” 해주던 시절의 그리움이 쌓인 망령처럼 보였다.


좋게 말해 자부심 혹은 자긍심이고, 까놓고 얘기하면 아직 버리지 못한 호시절의 미련이었다. 그럴싸한 양복에 뱃지 하나 달고 어디든지 가서 ‘에헴’ 하던 시절의 허세 외에 달리 볼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틈날 때마다 저울 빤짝이를 조롱하고 다녔더니, 어떤 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남한테 으스대려고 뱃지를 단다는 건 심한 비약이고, 뱃지는 직업적 자긍심의 표현임과 동시에 신분증을 대신할 목적으로 다는 것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이 말은 극히 일부만 맞고 대부분은 틀린 것이다. 


저울 뱃지가 신분증을 대신하는 경우는 지금까지의 경험상 한 가지뿐인데 그건 법원에 출입할 때다. 전국 법원에서는 청사 방호 등의 목적으로 출입자의 신체와 소지품을 검색하는데  변호사에게는 검색 절차를 일부 생략하거나 간소화해준다. 이때 굳이 변호사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주지 않더라도 뱃지를 달고 있으면 신분 확인이 된 걸로 쳐준다.


따라서 업무 차 법원에 들어갈 때만큼은 뱃지가 신분증 대신 신분을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또한 그 덕에 법원 출입구 통과 시간이 찰나만큼 단축되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이 외에는 뱃지가 신분증을 대신할 일이 없다. 그리고 사실 법원이라 하더라도 항상 뱃지가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개가 원칙인 법정에는 변호사를 포함해 워낙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므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교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뱃지만 보여줘도 짐짓 일 하러 온 변호사겠거니 하고 믿어준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는 조정(‘재판 외에 당사자들이 판사 등과 만나 화해를 도모하는 자리’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등의 업무를 위해 판사실이라도 방문할 때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외부인은 모두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뱃지를 달았다 해서 신분증을 안 들고 다녀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신분증이나 잘 챙겨갖고 다니면 될 것을 굳이 신분증을 대신하는 빤짝이를 가슴팍에 달고 다니며 자기 신분을 밝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일부 기업이나 기관에서 직원 간 유대감 조성, 소속감 고취, 대외적 이미지 형성 등의 이유로 회사 로고가 박힌 뱃지를 달고 다니게 하더라만,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각자가 개별 사업자일 뿐이니(거칠게 표현하면 변호사는 모두 생계형 독고다이다)  뱃지 단다고 난데없이 유대감 내지 소속감 같은 게 생겨날 리 없다.


그러니까, 결국 뱃지는 좋게 얘기해서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의 표출일 뿐 신분증을 대신하기 위해 달고 다니는 물건이라 할 수 없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자기 직업에 무한한 자긍심이 있어 굳이 그걸 외부에 표현하고 싶다면 그 정도 자유는 무려 헌법이 보장하고 있으니 시비 걸 일까지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배 꼬인 배알로 들여다보면 사실 자긍심의 표출이라며 달고 다니는 뱃지는 대부분 모래알 같은 구성원들을 결집시켜 단체의 권위를 세워보려는 의지의 표출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평소 뱃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 더 나아가 그 뱃지가 도대체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모두가 지독한 귀차니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 받아 든 순간부터 온갖 의문에 휩싸여 버렸으니 내가 받았던(이라 쓰고 '샀던'이라 읽는다) 뱃지는 진작 실종되어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일부러 어디다 버린 건 아닌데 생각난 김에 찾아보았지만 제 발로 사라진 게 이제와 새삼 돌아와 있을 리 없다. 


어차피 없어진 거 뭐 우연히라도 누가 주워서 요긴하게 쓸만한 물건이면 좋겠다만, 내 경험상 냉장고에 메모지 붙일 때 쓰는 마그넷 정도의 쓸모(뱃지 뒷면이 자석으로 되어 있다) 외에는 세상 쓸데없어 안타깝다.


그러게 굳이 뭐 이런 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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