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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변호사 Jan 30. 2019

변호사놈, 변호사님.

'님'에서 점 하나 찍고 돌리면 '놈'.

Hired Gun?


대한변호사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8. 12. 31. 기준으로 이 땅에는 21,573명의 변호사가 개업하여 활동 중이다. 어떤 사정으로 휴업 중이거나 아직 개업치 아니한 변호사들(휴업 상태이거나 미개업 상태이더라도 변호사 자격은 보유할 수 있다)까지 더하면 당신 주변에는 이미 25,838명의 변호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게다가 이 바닥에 진입하는 변호사가 퇴장하는 변호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니 당신 곁에는 앞으로 더 많은 변호사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변호사들의 면면도 21,537가지 이상으로 몹시도 다양할 것인데, 희한하게도 의뢰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변호사는 딱 두 종류다. “변호사놈” 아니면 “변호사님”.


아, 앞에 “놈”자 쓰시는 분은 이따금씩 입담이 구성진 사람으로부터 신체가 온전치 못하다거나, 정신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뭐 개의 자녀, 후레 한 자식, 호로 록 자식 등의 취지로 변형되어 불리기도 하더라만, 하여튼 대별하면 저렇게 두 종류다.


사실 글자만 놓고 보면 “놈”이나 “님”이나 그렇게 큰 차이도 없는데 그 의미를 놓고 보면 하나는 ‘에라이 빌어먹을 자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고 우리 선생님’ 급의 차이가 있다. 왜일까?


수많은 변호사가 있음에도 의뢰인이 변호사를 “놈” 또는 “님”으로 딱 잘라 구분해서 부르는 이유는 결국 명확히 승패가 갈리는 이 바닥의 냉혹한 생리 때문이다. 그 승패에 따라 의뢰인의 이해득실도 극명하게 갈리는데 하필 그 최일선에는 의뢰인이 구리 알 같은 생돈으로 ‘고용’한 변호사가 있다.


아, 변호사를 ‘고용’한다고 표현하면 또 어떤 분들은 변호사는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사람이지 직원마냥 고용하거나 물건처럼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반발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는 법리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으나 오늘날 변호사의 현실과는 영 동떨어진 것이다. 마치, 구한말 상투를 틀고 커다란 갓과 펄럭이는 두루마기를 걸친 선비가 신식 총포 가득한 이양선 앞에서 창의의 의병을 부르짖는 모습과 같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상당수의 사람들이 변호사를 만나면 “당신 승률이 얼마요?”하고 묻곤 한다. 사람 성격에 따라 만나기가 무섭게 대뜸 묻거나, 이리저리 변죽만 울리다 조심스레 묻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십중팔구는 변호사의 승률을 따진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호사를 찾아 자기 사건을 실컷 논의하고 난 다음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자, 그래서 내 사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변호사 입장에서 정답은 뭘까?


정답은 “저도 모르죠.”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아유~ 사장님, 이 사건은 무조건 이깁니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인간의 탈을 쓴 신이다. 그런데 사실, 허구한 날 무릎 꿇고 기도해봐야 들은 척도 안 하던 신이 하필 당신이 곤란한 때, 그 딱한 사정을 어떻게 알고는 귀인처럼 나타나 승소를 장담해 줄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결국 저 사람은 그저 당신의 돈을 노리는 사기꾼, 뜨내기임이 분명하다.




온갖 사건이 난무하는 서초동 송무 바닥에서 하나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건이 생물(生物)과도 같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건은 살아 숨 쉬는 존재와 같아서 언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고, 멀쩡히 잘 살아 있다가 하루아침에 죽어버리기도, 반송장마냥 헐떡거리며 오늘내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춘하기도 한다. 그래서 적어도 입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고작 인간 따위가 감히 사건의 결말을 장담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쯤은 스스로 장담한 대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순전히 재수이지 그가 제갈공명 뺨치는 통찰력과 혜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취지에서, 변호사의 승률을 따지는 것도 매우 무의미하다. 드라마 리갈하이(원작은 일본 드라마이지만 최근 국내 리메이크작이 나왔다)를 보면 승률 100%,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변호사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은 그가 '무적의 왕싸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승률에 열광해 앞 다투어 찾아온다. 하지만 만약 리갈하이의 주인공이 실재했다면 그는 지금 교도소 담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셈이다.


변호사의 ‘승률’이라는 것이 마치 UFC 파이터의 그것마냥 몇 승, 몇 패, 몇 KO로 기록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건은 일부 승, 일부 패의 결말을 맞게 되므로 통산 몇 % 승률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의 승률이 100%라고 광고한다면, 혹은 양심상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승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면, 그는 사기꾼 아니면 신이지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설령, 변호사마다 공식 승률이 기록되고 있다 치더라도 변호사의 승률을 따져 사건을 의뢰하는 것은 여전히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어떤 변호사의 공식 승률이 70%라면 이는 현재까지의 통산 전적이 그렇다는 것일 뿐 당신의 사건 또한 승소할 확률이 70%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승률은 접어두고 변호사에게 승소 가능성을 묻는 것은 어떨까? 당연히 무의미하다. 계속 얘기하지만 어떤 변호사가 당신의 이야기만을 듣고 승소 가능성이 70%라 해서 정말로 당신 사건의 승소 확률이 70%가 된다면, 그 변호사는 신이거나 당장 변호사를 때려치우고 로또나 사모아야 할 정도로 억세게 재수가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믿고 일을 맡길 만한 변호사를 찾는다면서 변호사의 승률부터 따져 묻거나 변호사더러 수치화된 승소 전망을 내어 놓으라 채근한다면 그는 조만간 이 바닥 호구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거스 히딩크가 말하길 약팀 상대로 5:0 대승하는 것보다 강팀 상대로 0:5 참패하는 것이 한국 축구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주먹 쓰는 건달도 수시로 약자를 두들겨 패는 쪽보다 수시로 강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본 쪽이 더 잘 싸운다. 마찬가지로 쉽고 간단한 사건만을 맡아 승률 100%를 기록한 변호사보다 어렵고 복잡‧다양한 사건만을 맡아 승률 0%를 기록한 변호사가 당신의 사건 처리에는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서초동 바닥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잔뜩 짊어진 채 일 잘하는 변호사를 찾아다니지만, 이들이 변호사놈을 만나게 될지 변호사님을 만나게 될지는 각자 하기 나름이다(물론, 일부는 재수에 좌우되는 면도 없지 않다).


승률이라든가 승소 가능성 같은 구차스러운 숫자놀음에 놀아나기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고 관련 사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찾는다면, 설령 패소하더라도 자연스레 변호사님 소리가 나올 것이고 당신의 변호사님은 당신을 위해 기꺼이 저돌적인 총잡이가 되어준다. 그러니 스스로 잘못 택해 놓고 ‘하는 일도 없이 돈만 받아먹는 변호사놈’이라 욕하지 마시라. 상길이놈이 끊어다 놓은 고기와 박서방님이 끊어다 놓은 고기는 근수부터 차이가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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