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 처맞기 전까지는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예전에는 연도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심지어 TV를 보며 카운트다운을 따라 하곤 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인생을 여행에 많이 비교하는데, 연도를 구분하고 나이를 카운트하는 것이 마치 제주도에 여행을 가는데 그 과정 전체를 줄과 칸으로 나누어 얼마나 갔는지 세어보는 느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월 1일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세우곤 했다.
다이어리 한 페이지가 가득 찰 정도로 새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으면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목표는 금연, 영어공부, 운동, 다이어트, 재테크, 승진, 결혼, 출산 등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나 계획과는 조금씩 멀어지고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이래서 못했고, 저래서 못했다. 내일부터 다시, 다음 주부터 등등
작심삼일을 3일에 한번 하라는데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고 있고 담배 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연초에 세웠던 목표 대비 달성률을 체크해보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초등학생들이 방학 때 생활계획표를 과하게 세우듯 너무 욕심을 부렸을 수도 있고 의지가 약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계획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찌할 수 없는 변수나 사건사고로 인해 달성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성취하기도 한다.
누구나 계획은 잘 세운다.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사람은 이 브런치조차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이 인간을 보며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한다.
감히 인간인 주제에 계획을 세운다고?
그래서 올해에는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올해에는 내가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한다.
그게 결국 올해의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만큼 새해 목표가 심플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만큼 도전적인 목표도 없다.
2022년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
1. 자주 전화하고 찾아뵙는 착한 아들 & 사위
2. 남의 편이 아니라 진짜 남편 - 제때 돈 보내주고 사랑의 끈을 놓지 않기 ㅎㅎ
3.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빠 - 딸 같은 며느리만큼 어려운 일
4.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아무 이유 없을 때에도 술 한잔 하고 싶은 친구, 후배, 선배
5.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 상사
이거면 됐다. 무얼 더 바라겠는가?
순간순간 사람과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결국 유한한 삶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까.
새해가 되었다고 가열차게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들께는 김 빠지는 소리가 될 수 있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원래도 유명했지만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어 더 유명해진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 얘기를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대 처맞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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