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위한 알쓸신잡
수평조직, 수평문화를 추구하는 회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까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채용공고에 수평문화라는 표현이 없으면 뭔가 아쉽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2년도에 DAUM(현 카카오)에 입사했을 때에도 이미 OO님이라는 호칭제도가 있었고 지금도 역시 많은 기업들이 영어 이름이나 OO님으로 부르면서 수평문화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수평문화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필요한 요소가 있겠지만 아래의 3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자를 포함한 경영진의 의지가 스타팅 포인트(Starting Point)입니다. 특히 대표가 해외 유학을 다녀온 경우에는 대부분 영어 이름을 부르고 수평문화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수평문화를 원하면서 의사결정을 혼자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함정이죠.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얼마만큼 강하고 오래 지속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자는 방향성이 결정이 되면 다음은 인사담당자들의 몫입니다. 작게는 호칭부터 시작해서 회의문화, 의사결정구조, 커뮤니케이션 방식, 휴가 승인 프로세스, 사내 게시판 운영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합니다. 문제는 직원들이 안 따라준다는 게 함정이죠. 성과는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의사결정은 위에서 다 할 거면서 무슨 수평문화냐고 반발도 심합니다. 그래도 참고 버텨야 합니다.
워크숍이나 회식을 할 때 야자타임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모두가 참여해서 재미있게 놀 거 같지만 현실은 소수의 용기 있는 자들만 앞에 나서서 분위기를 이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 조용하게 있다는 게 함정이죠.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세뇌교육에 빠져 그냥 대체로 가만히 있는 것에 익숙합니다. 심지어 야자타임에도 용기가 필요한데 수평문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문화라는 건 소수의 경영진이나 인사담당자의 노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명이든 수백 명이든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줘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수평문화는 절대로 자리잡지 못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반대로 저 3가지 없이 생긴 수평문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랜 시간 수평문화를 추구했던 회사들 중 아주 극소수의 회사들만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아마 대부분의 회사들은 수평문화와 수직문화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문화 말입니다. 만약 지금 본인의 회사가 수평과 수직 사이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면 위의 3가지 요소 중에서 뭐가 부족한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이도 저도 아닌 게 문제입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처럼. ^^
프로그램 초반에 저조한 시청률로 폐지 얘기까지 나오던 아는 형님이 지금은 10%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JT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7명의 고정멤버들을 일반 회사의 직급으로 매칭 해보면 아마도 강호동 대표이사, 서장훈과 이상민이 이사급, 이수근 부장, 김영철 과장, 김희철과 민경훈이 대리 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매주 바뀌는 출연자들이 신입사원 정도...(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경력, 나이, 출신(개그맨, 가수, 운동선수 등)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웃음을 만들어 내고, 아주 가끔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멋진 조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본 없는 예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포맷을 만들고 이런 꿀 조합을 만들어낸 제작진도 존경해마지 않습니다. 아는 형님이 성공적인 프로그램된 이유에는 수많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마도 서로가 이름을 부르면서 반말을 하고 편하게 소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정 멤버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 가수가 연예계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30년 경력의 강호동에게 반말을 하며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뭔지 모를 희열감이나 대리만족감을 줍니다. 스타킹 피해자들이 웃으면서 강호동에게 당했던 얘기를 하는 것은 단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이나 선배들의 갑질에 대한 경종이 되기도 합니다.
가수 겸 제작자로 유명했던 이상민이 이혼과 빚이라는 슬픈 키워드로 김희철에게 당할 때는 뭔가 안타깝고 짠~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시죠. 아는 형님이 호칭만 부르고 서로 존댓말을 하는 포맷이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출연진들이 강호동에게 주눅 들어있고 긴장하고 있는 모습만 생각만 해도 뭔가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회사에서 서로 반말을 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포맷이나 문화를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정쩡한 문화로 의사결정도 오래 걸리고 서로 스트레스받는 문화를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겉멋에 수평문화를 추구하고 실제로 일은 수직적으로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만약 수평문화를 선택했다면 몇 년이 걸리든, 얼마가 들든, 몇 명을 투입하든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서 대표이사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가 지키고 협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과감히 수평문화, 수평조직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직급과 직책의 문화를 만들어가면 됩니다. 수평적인 회사는 딸 같은 며느리, 친구 같은 아빠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 & 기업들이 있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높지 않은 듯합니다.
수평문화나 수평조직이 뭔가 트렌디하고 창의적으로 보이고 수직적인 회사보다 직원을 위하고 일하기 좋은 것처럼 과대 포장되어 있는데 그것은 케바케(Case By Case)라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수평문화는 좋고 수직문화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각자의 장단점이 있고 다른 것입니다 창업 초기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수직적으로 운영하다 어느 정도 커진 후에 수평으로 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문화가 주는 가치와 호불호는 산업마다 회사마다 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것입니다. 필자가 다녔던 인터넷 포털 회사들도 겉으로는 매우 수평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제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관료적이고 수직적으로 느껴졌는데 직원들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모 선배가 그랬죠. 사람이 100명이 넘어가면 관료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가 생기기 시작한다고요.
어떤 철학이나 강한 의지 없이 수평적인 문화,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하고 부족한 결과물에 인사담당자만 조지는 경영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인사 담당자를 조지고 있는 당신은 수평적인 사람인가요? 직원 모두가 OO님으로 부르는데 본인만 회장님으로 불리길 바라는 회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수평문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나요? 정말로 호칭이라는 껍데기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권한이나 급여구조까지 수평적으로 할 의지가 있나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원이 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경영진에게 본인의 의사를 강하게 주장한다고 평가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대표님을 대표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과장님을 과장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회사가 무조건 좋은 회사는 아닙니다. 수평이든 수직이든 아니면 제3의 문화이든 경영진과 직원들이 함께 노력하여 성과를 올리면서 근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화된 문화를 찾고 만드는 것이 정말 의미 있지 않을까요?
결국 어떤 문화이든 어떤 제도이든 함께 성과를 만들어내고 기여한 만큼 과실을 나누고 능력보다 아부나 정치로 크는 사람이 없고, 실력과 인성을 갖춘 진정성 있는 찐한 직원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회사가 진짜 좋은 문화가 아닐까요?
아는 형님은 근본 없는 예능으로 성공했지만 근본 없는 회사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강의 및 멘토링 연락처: junsme@gmail.com
작가 도서 - 예스24
작가 동영상 강의 - 인프런
작가 콘텐츠 - 퍼블리
본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있으나 개인마다 상황마다 공감의 정도가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사업에도 정답이 없기에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넓은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