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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Nov 30. 2020

무지개를 쫒는 아이들,

어른인 난 왜 '가시광선'에만 집착했었나

"이런 조무래기 아이들아. 아저씨가 한 마디만 해줄게. 

철딱서니 없이 쫒는 이 무지개 따위 말이야. 

어른들은 다 알고 있다구. 

그 일곱 빛깔 현란한 허상에 속지 않음을 말이야. 무려 아저씨가 조금만 있음 불혹이거든. 

미혹에 흔들흔들거리지 않는 그런 거 말이야. 줏대 뙇 있고 그런 거 알지? 하긴 뭐 말해줘도 알겠냐. 

잠깐 주제를 벗어났는데 말이지. 

무지개란 말이지 가시광선 따위가 물방울에 나누어져 너희들이 보는 일곱 빛깔로 나누어진 거거든.

그거 아니? 아이들아. 인간은 가시광선밖에 보지 못한다는 거. 몰랐지? 몰랐지?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줄까? 빛은 주파수에 따라 마이크로파,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 여러 종류로 나뉘거든. 어뜨케 아냐고? 김상욱 교수 '떨림과 울림'을 보고 한번 더 알았지. 지식인이 되려면 책을 읽어야지. 야 돈 벌어야 한다고 부동 산책만 읽지 말고, 글 쫌 잘 쓰려고 문학책만 읽지 말고, 과학책도 읽어야 한다고. 골고루 읽어야 하는 것이여. 알겠지? 

라고 물론 말하진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왜 무지개를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 잠시 내면의 숨어있는 본능들이 글로 나왔을 뿐.  

( 글 시작을 위해 약간의 어그로도 필요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



 아빠 이것 봐, 무지개야 

무지개 마니아인 딸아이. 무지개에 대한 집착은 본능적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총천연색을 한 번에 다쓰는 것만큼 촌스러운 건 없는데 아이들은 왜 이렇게 무지개에 집착하는 것인가? 직업이 디자이너로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동물을 디자인할 때 무지개와 유니콘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소유할 수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인가? 


무지개를 향한 사랑 본능은 그녀에게 패션, 식습관까지 다양하게 전이되었다. 

"아빠 이것 봐 이쁘지? 무지개야" 

그녀의 가방과 옷에도 형형 색색 무지개 사랑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무지개 케이크 먹으러 가요. " 

그녀의 식습관까지도 말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먹는 생크림 케이크이다. 

"아빠, 이건 빨간색. 이건 노란색... " 

생크림 케이크에 염료를 섞었는지 색색별로 만들어진 생크림 케이크는 촉촉하다. 그래, 맛은 있다. 

내 입맛에 그저 색소탄 생크림 케이크이지만 말이다. 


무지개 케이크를  가게 그리 흔친 않더라  feat. 도레도레

"아빠 이거 먹어봐. 정말 맛있어. 난 빨간색이 제일 좋아. 

아빠는 무슨 색이 젤 좋아...? "

뇌를 거치지 않은 대답은 매번 다른 대답을 한다. 

"아빠는.. 음..  노란색..  아니. 파란색..  "

"아빠 빨간색은 딸기 맛이고, 파란색은 블루베리 맛이야. 다으니는 빨강 맛이 젤 쪼아 " 


아.. 아이들은 각기 다른 맛을 느끼는구나..


색마다 각기 다른 맛과 경험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박쥐가 초음파를 느껴, 같은 세계에 살지만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 말이다. 아빠에게 한 가지 맛으로 느껴졌던 생크림 케이크는 아이에게 한 겹 한 겹 소중한 기억이 쌓인 케이크를 완성하고 있었다. 내 입에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색들은 말을 걸어오는데 내 입은 그저 가시광선 같이 합쳐서 '생크림'맛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 봤다는 이유로 "인생 is 고뇌. 고난. 혹은 환희" 등의 정의를 내리고 사는 어른이었다. 각 종 빛깔의 색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가시광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빛은 가산 혼합 방식이라 합쳐지면 합쳐질수록 밝아지는 무채색으로 변하니까. 전문가라는 프레임에 빠져 매일 색을 다루는 직업마저 무색하게 했다. 다양한 색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남들과 똑같이 보는 무채색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일을 하면서 수 천 가지의 컬러를 본다. 직업상 팬턴 컬러칩을 쓰는데 누군가에겐 같은 한 가지 컬러도 채도, 명도에 따라 컬러는 수업이 많은 레이어로 나누어진다. 누군가에겐 핑크 컬러가 어떤 이에겐 인디고 핑크, 혹은  베이비 핑크로 나누어지고 전문가에겐 14-1420TPG 라는 컬러로 명명되기도 한다. 


내 인생은 무슨 색인가. 그저 합쳐진 무채색인가. 오늘 하루는 달콤한 빨간 맛의 하루였나, 아니면 어둡고 칙칙한 똥색의 컬러였나. 결국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컬러를 느낄 수 있는가'라는 답변에 도착했다. 어른들이 말하는 가시광선 같은 시선으로만 보지 말고, 아이들처럼 색을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나누어 하나하나 느낄 수 있음을 말이다. 

"이건 오션 블루라는 색깔이야" 

라고, 전문가가 말해도 

"아니. 이건 내 컬러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색깔이라고." 

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컬러는 찾는 법은 그저 나와있는 컬러칩에서 이 컬러 저 컬러를 비교하고 찾는 게 아니라, 오늘의 빨간 맛과 내일의 우울한 회색 같은 하루가 합쳐져서 만들어 내는 것임을. 

색을 덧대고 덧 데어 자신만의 컬러를 만들어 가는 인생을 가르쳐준 딸아이다. 


무채색의 선글라스를 쓴 어른의 모습이 부끄럽다. 너의 눈에 세상이 이렇게도 알록달록해 보이고, 하루가 총천연색인데 하나의 레이어로 바라본 난 너에게 또 하나를 배웠구나. 


그래. 인생은 한 가지 색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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