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수 없는 다짐

아이를 보며 일희일비하지 않기!

긴장하는 아이를 달래주는 남편


어제 두 아이 모두 바둑대회에 출전했다. 매번 대회에 나갈 때마다 예선 탈락을 했던 터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바둑학원에서 버스를 대여해서 아이들을 데려간다고 해서 아침에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서 대회장에 보냈다. 휴대폰을 챙겨주며 "대회 끝나면 연락해~ 엄마가 데리러 갈게!"라고 말했다.


휴일 아침을 여유롭게 보냈다. 오전에 나는 운동을 하고 남편은 밀린 잠을 자게 한 후 오후 1시쯤 대회장으로 출발하려고 했다. 더 일찍 데리러 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대회장에서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싶어 했다. 그러라고 하고 여유롭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저희 언제 데리러 오실 거예요?"

"끝났어? 언제 가면 될까?"

"저는 16강까지 갔고 형은 8강까지 갔어요."

"16강까지? 축하해~ 8강은 언제 시작하는데?"

"오후 1시 40분요"


남편에게 더 쉬라고 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준비를 했다. 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남편이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남편과 나는 기대 없이 대회장에 갔다. 대회에 출전한 아이들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아이들을 지도하셨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외식도 하려고 했다.


큰아이는 경기에서 계속 이기더니 결승까지 가게 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계속 이기니까 갑자기 기대가 생겼다. 결승 경기를 기다릴 때도, 경기를 지켜볼 때도 '이겼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이는 결승에서 져서 2등을 했다.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대단하다고 했다. 16강까지 간 둘째에게도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둘째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아이가 2등이나 했는데 나는 경기에서 졌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부모의 욕심이란. '우승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커져버린 기대를 나는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좀처럼 평정심을 찾지 못한다. 아이가 상을 받을 때에는 온 신경이 흥분한다. 어디에다 자랑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참느라 애쓴다. 남편과 나의 일보다 아이들 일에는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이들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없을까?'


나는 아이들이 잘할 때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나를 실망시키고 기대가 무너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와도, 아이가 무엇을 잘해도 나는 속으로 '지금은 이렇지만 크면 내 기대에도 못 미치는 성적표를 가져올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했다.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심정으로 아이의 일에 충분히 기뻐하지 못했다.


반대로 아이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힘들어했다.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걱정했다. 특히 나를 닮아 예민한 성격을 가진 둘째를 볼 때마다 '커서 나처럼 마음이 힘들게 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수시로 했다. 그럴수록 둘째 아이의 행동에 예민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글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었다. 기쁜 일에 기뻐하고 슬픈 일에 슬퍼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 나처럼 기쁜 일에 충분히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더 잘못된 거 아닐까. 슬픈 일에 딱 그만큼 슬픈 것이 오히려 정직한 것이 아닐까. 기뻐도 기쁘지 않은 척 겸손을 가장하고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솔직하지 않은 태도가 더 이상한 게 아닐까.


문득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EXID의 멤버 하니가 자신들의 노래가 차트에서 역주행했을 당시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식 일에 어떤 부모가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니.JPG


나는 어려울 것 같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쁠 때 충분히 기뻐하고 슬플 때 슬픔을 느끼되 대신 내 아이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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