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도시 걷기
압구정에서 4.3 민중항쟁, 그리고 이념, 분단, 자이니치 문제를 다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봤다. 분단되기 전에 조선땅에서 나왔다가 분단이 돼버려 가뜩이나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동포 간 이념 분쟁을 겪게 된 가족의 이야기이다. 제주도 출신임에도 조총련이 되어 북한과 왕래를 택한 이유가 4.3 민중 항쟁에서 남한 정부와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두려움 때문이었음을 밝히며 그 이야기를 치매가 걸릴 때가 되어서야 발설할 수 있었단 한 인간에 대한 기림과 애도를 영화에서 제시하고 있다. 추천할 만한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지하 건물에서 쏜살같이 빠져나와, 유난히 한산한 일요일 오후 도심이 낯설었다. 이태원 참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쏟아진 기사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3이라는 65년 전 역사적 사건을 직면한 영화를 보고 성수대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벌써 30년이 넘어가는 그 일, 중학교 때 그 일을 동네가 가깝지 않아서 느끼지 못했지만,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두 단락을 10월 30일 저녁에 썼었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벌써 그 일이 3주가 되어가는구나. 차의 몇 주전 주유 영수증을 보고, 그 날짜로 돌아가는 기술이 있다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3주 전에 성수대교를 건너면서,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약수까지 가는 길에서 순댓국집에 들러 몸을 녹이며 밥을 먹었다. 옥수에서 이태원으로 가는 길, 이태원으로 갈수록 고요해지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몸이 더 아득해지는 느낌으로 이태원까지 밀려들어갔지만 도저히 무엇을 기록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주로 하는 애도의 방식은 '걷기'이며 직접 찾아가 보기이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던 2014년 4월 16일, 나는 우연히 그 전날에 회사에서 퇴직과 같은 휴직을 했었고, 아침에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세월호 참사의 첫 보도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며칠은 무감각했다. 그러다가 시신들이 살기 위해서 어떻게 발견되었더라는 등의 보도를 보고 소름이 끼쳐서 이른 아침에 진도행 버스를 탔다. 오후에 다 되어서야 도착한 팽목항은 정말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 무게감이 있었다. 들고 갔던 카메라 렌즈는 바닥을 응시할 뿐 무엇도 담아낼 수 없었다. 유족들은 모여있었고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에 잠수부를 동원한 선체 수색이 계속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며, 정부가 사라진 공간에서 이곳저곳에서 구호품들이 보내졌다. 밥은 무료로 먹을 수 있었지만, 차마 그 구호품을 내가 소비할 수는 없었다. 팽목항 근처 식당에서 밥을 시켜 먹었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주한 참사였다. 그때부터 걷는 방식을 택했다. 압구정에서 이태원까지 16km 정도를 걸으며 작은 애도를 했다.
나는 요즘 이태원 참사에 반응하는 내가 좀 무뎌진 것인가, 누군가가 무뎌지게 하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겼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간이 흘러가고 있으며, 나는 그 참사를 잊게 되는 것 같다. 슬픔을 목놓아 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어디에도 없다. 내가 이제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것인가, 구조적 암묵적 참사는 고요히 흘러가고 있다. 인간이 언어 이전에 가진 몸동작과 비명 같은 소리들, 그것이 가진 원초적인 슬픔에 인간은 주로 무너지게 된다. 그것을 덮어놓은 무엇인가 있는 것인지, 내가 덮어놓을 정도로 무난해진 것인지, 둘 다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도처에 남아있는 참사의 조각들을 모아, 그 일을 결국에 드러내고 애도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유일한 역사적 진보라고 생각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드러난 4.3과 끝까지 감추려 했던 인간의 몸, 성수대교 참사를 참회하며 반성했던,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몸,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와 자신의 친구를 눈앞에서 보낸 이들이 다시 겪게 된 이태원 참사. 조심스러움과 사려 깊음도 애도의 방식이며 아울러 강하게 분노하고 통상의 추모 방식을 따름과 자신 나름의 애도 방식으로서 나의 의미를 찾고 사회의 의미를 재발굴하는 것, 지금 뭉근하고 두텁게 해야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