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진성리더십] 디커플링 - 언행불일치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20기

 디커플링, 바깥에서 많이 들리는 용어이다. 미중 경제의 글로벌 수요공급 비동조화나 우리나라 금리와 미국 금리가 같이 움직이지 않는 현상을 가리켰다. 그것이 어떻게 삶을 달리할지 알지 못하지만 다시금 현실과 유리된 이론들이 우후죽순 구름처럼 피어난다. 결국에 삶은 딛고 있는 걸음인데,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길을 비추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을 삶의 디커플링이라고 하겠다. 진성리더십을 통해서 과거의 생활방식을 뚫고 나오는 미래의 빛은 도달하지 못하면 수많은 변명과 가끔의 우울이 찾아올 수도 있는 일이다.


 내 삶에 있어서 디커플링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먼저 직업으로써 주춤 거림이다. 10년 전에 한 달에 200만 원만 벌 수 있다면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으며,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출판할 수 있는 출간계약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파트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으로 글 쓰는 일을 부단히 하려 했으나, 장기간 여행은 글을 낡게 만들었다. 이미 달라져버린 시선에 출간계약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때론 수많은 좋은 책 속에서 굳이 내 이름을 올려서 나무를 죽일 필요가 있는가 싶었다. 그래서 인문대학원을 찾아갔다. 숫자로 사회를 재단하는 것보다는 논리와 이야기로 삶을 벼려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로 몇 해간 200만 원의 벌이도 채우지 못하는 풀타임 박사를 했다.

 

 박사과정 중에서 돈벌이할 일이 생겼다. 잘됐다 싶었다. 공부의 어려움을 잊기 위한 피난처이기도 했고, 가부장제의 잔상이 남아있어 돈벌이를 많이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충족감은 사회적 위치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해 주었다. 10년을 다니던 회사에 다시 들어가 수행한 3년의 컨설팅은 다시금 의외의 길을 마련해 줬다. 업계는 변하고 있어서 범용의 컨설팅 방법이 통용되지 않고, 산업분야에 일정기간 속해있던 이들이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박사논문 심사에서 한 번 탈락했고, 태어난 아이는 다시금 수많은 변명을 양산하게 했다.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를 급하게 만들고, 창업을 같이 하자는 선배와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으며, 컨설팅 회사를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법인을 등록하고 그 영업의 선 앞에서 주저하며 복잡한 행정처리가 버거웠다. 어느 날 파트너는 말했다. 집에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여전히 변하지 않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습관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나와 타인에게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논문을 통과하고, 이후에 겨우 책을 쓸 수 있었다. 드러남은 용기이며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직업적 노력의 부족함은 두리번거림, 이것저것 해봄으로 치환했다. 이는 관계로써의 어려움이다. 때론 성공하는 이들은 과거의 실패를 잊고 무엇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신화화한다며 비판적 근거를 마련하면서도, '삶은 살아만 있으면 됐다'는 허무주의를 생각하며 자위했다. 동시에 나는 '잘 먹고 잘살면 됐지'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질문은 부정하면서도 대안의 가치를 향해가는 나르시시즘은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개념이나, 자신의 꿈을 찾는다는 이유로 먹고사는 일을 아예 등한시하는 태도는 먹고사니즘보다 더욱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다. 현실에 발을 닿지 않고 있으면 어떤 일도 설득력을 잃어가듯이, 삶은 기존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그렇다고 전면 부정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나름의 책임을 또한 다해야 한다. 다시금 태어난 아이들은 자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에 시간이 지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아이들을 키우느라'하며 운운할 나의 변명은 차라리 나를 말없이 포기하거나, 끝없이 나의 삶을 살면서 그 모습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나를 표현하는 방식인 직업을,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에서 지행합일을 나 먼저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며 말을 나누는 일에 나는 평생을 투신한다는 것에 아직 시간은 남아있지만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으며, 저 멀리 있는 불빛을 향해가면서도 매일매일 걸어가고 있는지 길 위에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