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김치 맛을 다시 찾은 겨울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릴 적 어느 겨울이 유난히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열셋, 어머니를 잃은 그해 겨울은 세상에서 가장 길고 추웠다.


아이 셋이 남았다는 소식에 외할머니는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양식과 김치를 마련해 오셨다. 포기김치는 어린 손으로 썰어 먹기 어렵다며, 무와 배추를 나박김치처럼 잘게 썰어 양념에 정성껏 버무려 큰 항아리 두 개에 가득 담아주셨다.


그 김치가 우리에게는 겨울을 견디는 힘이었고, 어린 마음을 감싸주는 외할머니의 품이었다. 서툰 손으로 밥을 지어 그 김치를 파먹던 날들. 지금 생각해도 그 맛은 세상 모든 음식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가장 눈물겨운 맛이었다.


배고파서 맛있던 것이 아니라, 그 김치에는 우리를 살리려는 마음이 깊이, 깊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칠십이 넘어 되살아난 그 맛


그 뒤로 나는 평생 그 맛을 찾아 헤맸다. 양념도 바꿔보고, 무의 굵기와 배추의 식감도 달리해 보았지만 외할머니의 그 겨울 김치 맛은 한 번도 제대로 재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흔두 살을 보내는 올해, 마지막 겨울을 넘기듯 문득 마음이 시켜서 김치를 담가보았다. 손끝에 오래된 기억이 스며든 듯 담그는 순간부터 마음이 떨렸다.


그리고 며칠 뒤, 익은 김치를 한입 떠먹는 순간- 나는 그 겨울로 돌아갔다. 외할머니의 항아리 앞, 언 손을 녹이며 밥 한술 떠먹던 그 조용한 방 안으로.


세월이 한 바퀴 돌아 나는 이제야 그 맛을 스스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없는 겨울을 지켜준 외할머니의 손맛을 칠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내 손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맛은 기억이고, 사랑이다


첫눈이 내리는 오늘, 나는 다시 깨닫는다. 맛이라는 건 결국 기억이고, 사랑이고, 시간이 데워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2025년 12월 6일

-신점숙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하의 바람이 건네준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