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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Dec 27. 2022

명상하는 사람들이 날씬한 이유

명상에 대한 초보적인 설명


저는 명상에 있어서는 사실상 초보입니다.

하지만 제게 명상은 즐거운 일이고, 꼭 필요한 것임이 확실합니다.     


어쨌든 명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날씬한 것 같고, 저도 살이 찐 건 아닙니다.

명상을 일상적으로 하게 되면 과하게 먹는 일과 가짜 배고픔이 줄어들게 됩니다.               

 왜 명상하는 사람들은 날씬한 걸까요?      

 명상은 생각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지우니 음식에 대한 생각도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허기가 져야만 적당량의 음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생각 없이 어떻게 사냐?'라고 물으시겠죠?   

  

사람은 어차피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몸을 지니고 있는 한, 몸과 마음에서는 매일 같이 노폐물이 나옵니다. 몸을 비우고, 씻어내는 일을 매일 하듯 마음에서도 쓸데없는 생각들이 계속 올라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디톡스나 간헐적 단식을 합니다. 하루에 16시간 이상은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 몸의 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게 내버려 두며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몸까지 노화시키고 병들게 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을 비우지 않고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라 내 생각을 더 심화시키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명상은 수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는 일입니다.

몸이 말하는 이것이 먹고 싶다, 저것을 사고 싶다. 그것을 가지고 싶다, 당신이 잘못했다, 내가 옳다 등등의 사랑과 일치되지 않는 모든 생각들을 떠나보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무‘無 ’에 일치하려고 애쓰는 일입니다.     


 20세기에 가장 훌륭한 철학가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간주되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명상은 삶의 일부이지 삶과 다른 무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삶을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제대로 된 명상을 하기가 힘듭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마음을 갖고서 눈을 감고 앉아있다면, 그 판단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무슨 일이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와 같은 기본적인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생각을 지워내기가 수월합니다.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명상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고,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힘쓰며 다시 일상을 명상과 공유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명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내 생각을 지우는 일은 작은 호불호부터 시작하여 나의 모든 판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싫고, 저것은 좋고 작은 하나하나에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고 그 생각들을 시간이 지나 점차 불어납니다.

 어릴 적 고양이가 무섭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성인이 되어서 지나가는 고양이가 너무 무섭고 싫다면, 그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불어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고양이가 무섭다는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길을 가다가 정말 순한 고양이 한 마리를 보더라도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점차 아무 방향으로나 나갈 수 있고 커질 수 있고, 나중에는 어떤 생각이 사람을 사로잡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근심, 걱정이 되고 정신병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음식에 대한 생각은 나의 다른 모든 생각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래야만 하고, 저것은 저래야만 한다는 나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되면 이 음식을 먹어도 되고, 저 음식을 먹어도 되며,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으면 안 먹어도 그만입니다. 사실 배가 고파도 그 순간만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세상에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게 있더라도 내가 그것을 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신이 정하고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인간 세포의 DNA는 지름이 0.2mm도 안 되지만, 600쪽 분량의 책 100권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지령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씨앗하나에 우리는 물을 주기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엄청나게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가 열립니다. 아이가 자라나 성인이 되는 과정을 신이 모두 우리의 내장 프로그램에 담아 놓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만든 우주의 지성은 우리가 생각을 내려놓을 때 ‘영감’이라는 것을 보내줍니다. 우리가 일정시간 단식을 하면, 몸이 알아서 세포를 빠르게 재생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식하는 동안, 몸은 알아서 스스로 노폐물을 내보내고 정화작용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 대해 우리가 관여할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일정시간 먹지 않기 위해 쉽지 않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일정시간 생각을 내려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제 부족한 경험으로는 잡생각이 사라지면 고요한 빛의 느낌이 내면에 자리하게 되고, 그 빛 에너지가 충만하면 모든 물질은 같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거짓 배고픔은 사라집니다. 무언가 충만합니다.


 그리고 동물과 지구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어렴풋하게 들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명상가들이 채식을 하는 것인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의 일부를 공유합니다.   

  

 명상하는 마음은 침묵한다. 그것은 일체의 생각-생각이 깃든 모든 심상, 말, 지각 등-을 멈추었을 때 이루어지는 침묵이다. 이 명상하는 마음은 사랑의 폭발이다. 분리됨을 모르는 것이 이 사랑이다.

모든 분별이 그치는 사랑의 상태이다. 아름다움처럼 그것은 말로 설명될 수 없다.

이 침묵으로만 명상하는 마음이 발동한다.     


 침묵과 마음의 넓이는 병행한다. (즉, 침묵이 깊을수록 마음은 더 넓어진다.)     

 명상은 힘든 작업이다. 그것은 최고 형태의 단련을 요구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외적, 내적인 부단한 자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훈련이다.

올바른 삶에 기초를 두지 않고는 명상은 도피가 되며, 그럴 경우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올바른 생활이란 사회적 도덕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선망이나 탐욕 그리고 권력 추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의지의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앎을 통해서 그것들의 실상을 깨달아야 가능하게 된다. 스스로 자아의 활동을 알지 못하면 명상은 감각적인 흥분이 되어버리고, 그래서 그 의의가 거의 없어진다.     


 명상은 일상생활과 다른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나, 자기 아이들을 생각할 때, 이렇게 명상은 어디서든 하루 종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살펴 자각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인식하는 것, 이 자체가 명상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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