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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09. 2022

지금 가을여행이 필요한 이유

- 잊었던 여행지가 살아나는 비법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한 장의 티켓 사진이 나온다. 


다까야마에서 시라카와고까지 가는 버스 티켓이다. 가격은 2600엔. 2019년 6월 11일 12시 50분에 출발하는 걸로 나와 있다. 맞다! 나는 이 고속버스를 타고 시라카와고에 갔었다. 시라카와고에 가기 전에 다까야마에 몇 시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 여행하던 이야기를 쓴 여행기가 많지만 다까야마에 대한 여행기를 쓴 기억은 없다. 몇몇 기억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 다까야마는 내 여행 기록에서 까맣게 잊었던 도시였다. 다른 지역 여행기를 쓸 때도 다까야마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결국 몇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나는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 정리가 쉽지가 않다. 한 번 미루다 보면 사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인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으나 디지털카메라가 생기면서부터 일거리가 엄청나게 생겼다. 물론 어떤 이는 간혹 필름을 맡기지 않고 서랍에 몇 년씩 썩혀두기도 했지만 말이다. 디지털카메라의 가장 좋은 점은 SD카드 한 장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도 지울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생각을 해보면 격세지감이다. 보통 필름 한 통이 스물네 방 또 서른여섯 방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잘못 찍게 되면 속이 엄청 쓰렸다. 더군다나 내가 찍은 사진이 제대로 찍은 사진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사진관에 현상을 맡길 때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눈앞에서 인화된 사진을 볼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진에 문제가 생기면 낭패였다. 예를 들면 사진에 빛이 들어가고 손가락으로 렌즈를 가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 그날 찍은 사진은 허공에 날아가는 셈이었다. 하루 종일 공을 들인 게 허사로 돌아가면 맥이 빠졌다. 그게 결혼식이나 환갑날처럼 특별한 날일 때는 그 원성이 평생을 가기도 했다. 또한 필름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사진을 찍을 때면 아껴가며 신중하게 촬영하는 게 기본이었다.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필름을 많이 사 가지고 가면 그걸 유럽에 가서 팔 수도 있어요. 

유럽에 팔면 아마 두 배는 받을걸요.      


그만큼 당시에 유럽은 필름값이 비쌌다. 실제로 나는 그걸 해보지는 못했지만 유럽의 필름값이 비싸다는 정보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항에서 넉넉하게 필름을 챙겨갔던 기억이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화하는 건 더 큰 문제였다. 적게는 몇십 장 많게는 수백 장을 일일이 확인해서 어떤 사진을 인화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또 그걸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앨범에 최종적으로 정착을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양이 늘어나니 곤혹스러웠다. 필름을 사면서부터 인화할 때까지 이어지는 가격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부터 세상이 달라졌다. 내가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가 있었고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삭제도 가능했다. 디지털카메라야말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조바심이나 신중함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기막힌 발명품이었다. 필름 카메라의 경우, 사진을 찍은 다음에 필름을 보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으나 디지털카메라가 생긴 이후에는 그런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사진 기술 또한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나만이 아니라 아마 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사진에 추억이 하나 둘은 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신나게 사진을 찍고 난 후 사진관에서 현상을 위해 카메라를 열었을 때 필름이 없는 그런 경우였다. 필름이 없는 채로 신나게 포즈를 취해가며 하루 종일 열심히 사진을 찍었으니 황당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던 사진사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얻어먹게 되었다. 

다음으로 흔히 하는 실수는 노출이나 기계 조작이 서툴러서 벌어졌다. 사진이 너무 흐리거나 신체 일부가 잘리기도 했고, 어둡게 나와 도저히 쓸 수 없는 일도 잦았다. 지금이야 포토샵이나 일반 어플 프로그램에서 사진을 어느 정도 하지을 보정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기술은 전문 사진사만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필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활용해서 색감을 조절한다거나 빛의 노출 정도를 근사하게 조절함으로써 마술 같은 사진을 선리에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니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얼마 전에 지인 한 분이 인스타그램에서 아이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한 후 당시에 찍었던 사진 이야기를 했다. 한달 동안 대략 6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으리라 생각하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6천 장이라는 숫자에 압도되었다. 

적당한 분량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6천 장이라는 사진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아마도 한 달이라는 기간과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엄청난 양의 사진으로 변했으리라 믿는다. 한동안 그 사진들을 고르고 지우고 선택하느라 골치 아프겠지만 어쩌면 그것도 평생에 몇 차례 해보지 못하는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부지런히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면 즐거운 고통을 맛보는 것 같다. 그나마 아이들이 어릴 때가 아니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어찌 되었거나 이 가을은 햇살이 눈부셔서 파란 가을 하늘만 봐도 단풍잎 지는 나무만 봐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계절이다. 사진이야 그다음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일단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눈과 마음이 끌리는 대로 셔터를 누르면 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간은 흐름을 멈추고 당신에게 와서 보석처럼 박힐 것이다. 그게 사진이 당신에게 주는 가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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